[갱블] 권력에 손 내밀고 굴종…말로만 '정교분리'

"목사님, 그리고 성도님. 저는 '화평케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 지역·이념·세대·계층으로 갈려져 반목하고 갈다하는 일이다.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함께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부터 더욱 노력하겠다."(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제가 대통령이 되면 종교계와 문화예술계 등 다양한 대북 민간교류협력 사업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예수님의 사랑에 따라 국민을 사랑하면서, 모든 국민이 공평한 기회를 갖고 공정하게 경쟁하고, 정의를 따뜻하게 나누는 나라를 만들도록 하겠다."(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가장 큰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목사 이영훈)가 지난 14일 주최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한 말입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함께 참석,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두 후보가 한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입니다. 틀린 말 하나도 없습니다. 저 말만 실천한다면 대한민국은 한 단계 성장할 것입니다. 그동안 국가조찬기도회는 한국개신교가 대통령을 초청한 행사였는데, 특정교회가 대통령 후보를 초청해 국가조찬기도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진행한 것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힘이 셉니다.

저는 개신교 목사로 대통령과 국가지도자를 초청해 국가조찬기도회를 할 때마다 반가움·뿌듯함보다는 씁쓸함·부끄러움이 들 때가 더 많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권력이 국가조찬기도회를 권력유지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또, 입으로는 정교 분리를 외쳤지만 권력에 아부하고 굴종한 역사가 더 깊기 때문입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47년 전인 1965년부터 시작됐습니다. 1965년 당시 김준곤 목사(CCC 전 총재)와 기독교 국회의원들이 의정 활동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전파하고 그 정신을 실현하려고 만든 단체가 국회조찬기도회의 시작입니다. 즉, 애초에는 교회 다니던 국회의원들이 모인 기도회의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고, 1968년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열렸습니다. 1974년 5월 4일에 제작된 '국가조찬 기도회' 영상을 보면 "하느님께서 대통령이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을, 어려운 문제를 옳게 파악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득채워 줄 수 있도록 기도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대통령을 위한 기도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 개신교는 이미 국가권력을 위한 성실한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그래도 박정희는 조금은 나았습니다. 전두환은 이 조찬기도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 결정판은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였습니다. 이 조찬기도회는 KBS·MBC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까지 됐습니다. 기독교 목사들이 모인 기도회를 공중파가 생중계했으니 전두환은 한국개신교를 통해 확실하게 국가지도자로 인정받았습니다.

'학살자' 전두환을 이스라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되라고 한 것은 목사가 신성 모독을 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전두환을 여호수아에 비유한 1980년 국가조찬기도회는 한국 개신교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오욕과 굴종을 남겼습니다.

우리 헌법은 분명히 정교분리가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조찬기도회는 이처럼 헌법이 명시한 정교분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헌법 정신을 짓밟는 권력자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최고권력자를 위한 충성의 도구였던 셈입니다.

권력자는 기독교를 적절히 이용하고, 일부 목사들은 하나님보다는 권력자에게 충성했습니다. 이른바 공생관계였습니다. 종교와 권력이 공생하면 권력도 죽을 뿐 아니라 종교도 죽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생명을 잃어버린 이유는 바로 이 조찬기도회가 단단히 한몫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신교 목사가 간곡히 부탁합니다. 세 후보 모두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 첫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가조찬기도회, 이제 부끄러운 역사를 끝낼 시간이 됐습니다. '사꾸라 목사'로 오해할까 봐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창조론, 성경무오와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육체부활을 믿는 아주 보수적인 목사입니다.

/耽讀(인서체와 함께하는 블로그·http://blog.daum.net/saenoo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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