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도내 이종 장르간 협업 활발

도내 공연예술단체들이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이종 장르간 협업 방식이 바뀌고 있다. 이전에 서로에게 필요할 때 도움이 되어주던 '단순 품앗이' 수준에서, 서로 힘을 모아 한 편의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서로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이전까지만해도 이종 장르간 협업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잠시 메워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연극에 안무가 필요한 장면이 삽입될 때 지역 무용가들이 연극인들에게 무용을 잠시 가르쳐 준다든지, 연극 연출 기법이 필요한 무용 공연에 연극 연출가들이 연출을 맡는다든지 등 이른바 '스쳐가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러던 것이 최근에는 필요에 따라 한 작품 안에서 전통 연희와 직업 가수, 국악인, 연극인, 음악인들이 함께 호흡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먼저 지난해 전국연극제 대상작인 사천 극단 장자번덕 <바리, 서천 꽃 그늘 아래>는 창작가무악극으로 바리데기 설화에 경남이 가진 전통 연희 가운데 하나인 '남해안 별신굿'이 접목됐다. 여기에 사천 지역 타악 연주 단체 '마루' 회원들이 참여해 현대 뮤지컬, 민속 신화, 전통 연희 간 조화를 꾀해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천지역 타악 연주단체 '마루'가 참여해 민속신화, 전통 연회 간 조화를 꾀한 창작 가무악극 <바리, 서천 꽃 그늘 아래>.

이어 지난해 연말 가곡전수관이 선보인 창작가무악극 <매창>에는 극단 마산 및 창원 극단 미소 단원, 일본 유학파 한정훈 지휘자가 이끈 창원시립교향악단 그리고 우리 전통 가곡이 한데 어우러져 조선시대 여류 시인 매창의 일대기를 담았다. 클래식 음악, 연극, 국악이 한데 어우려져 한 가지 작품을 만든 도내 첫 사례였다.

더불어 극단 마산은 지난 2일 새 작품 악극 <청춘극장>을 의령에서 처음 선보였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악극인 이 작품에는 마산 해오름 예술단이 트럼펫·기타·아코디언으로 시대적 분위기 돋우면,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조수연 씨, 가수 배진아 씨가 옛날 노래와 연기로 극에 재미와 맛을 더했다.

마산 해오름 예술단 등 문화계 인사들이 힘을 보탠 악극 <청춘극장>.

이 작품은 또한, 무용가 박은혜 씨가 안무를, 아마추어 사진작가 이진 씨가 포스터 촬영 및 홍보를 맡는 등 작품 내외적으로 문화계 인사들이 힘을 보탰다. 더불어 작품이 1930년대를 배경으로한 시대극인 점에 착안해 내달 마산 공연때는 김호준 마산음악협회 회장이 수집한 축음기와 희귀 골동라디오 전시가 곁들여질 예정이다.

이 때문에 연극이라기보다 음악, 무용, 사진, 국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종합예술로 보는 것이 맞을 듯 싶다.

이렇게 도내 다종다양한 문화예술인들 간 협업이 활발해지는 데는 문화예술인들 사이에 상호 교류와 소통폭이 넓어진 데서 비롯됐다. 몇몇 예술인들은 이를 두고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의 성과로 보고 있다.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은 공연장과 전문예술단체 간 인적·물적 협력을 바탕으로 예술단체는 공연장소·연습장소 등 물적 활동 기반을 확보하고, 공연장은 레퍼토리 공연 유치와 관객 개발 효과를 높이고자 마련된 제도. 지난 2010년 도내 4개 단체로 시작됐는데, 경남은 타 시도보다 운영성과가 뛰어나 올해는 모두 9개 단체(마산 극단 객석과 무대· 극단 마산·통영 극단 벅수골·거제 극단 예도·사천 극단 장자번덕·진주 극단 현장, ㈔아름다운 우리가곡, M&S무용단, 큰들문화예술센터)로 늘어났다.

이를 통해 단체별로 한 해 적게는 5000여 만 원에서 많게는 8000만 원까지 지원받아 활발한 예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관계자 회의 및 워크숍, 그리고 공연장상주단체 페스티벌 등으로 상호소통과 교류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극단 마산 최성봉 연출가는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을 통해 마산을 넘어 경남 전역에 있는 문화예술단체, 그리고 국악, 무용 단체들로부터 다양한 조언 및 협력을 구할 수 있게 돼 작품 제작에 서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이번에 <청춘극장>도 공연장상주단체로 함께 활동하는 가곡전수관과 협업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또 보완해 좀 더 규모가 큰 작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 협업 체계 활성화는 문화예술계 세대교체 시기와 맞물려 있는 점과도 연결된다. 이들 단체를 이끄는 사람들 대부분이 40대로 대개 10대 말 20대 초 부터 지역 문화예술계에 내에서 형제처럼 지낸 이들이 많다. 마산을 예로 들면, 무용가 박은혜 씨와 극단 마산 최성봉 연출가는 1972년생 동갑내기로 오랫동안 지역문화계에서 호흡을 맞춰 온 사이다. 가곡전수관 신용호 사무국장 역시 이들과 나이가 같아 서로간 소통의 폭이 깊고 넓다. 이들은 자주 만나 허물없이 일상과 작품에 대한 논의를 한다.

가곡전수관 신용호 사무국장은 기자와 함께 한 자리에서 "처음에 건축 일을 하다가 가곡전수관 사무를 맡으려니 좀 갑갑한 부분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주변에 또래 예술인들을 많이 만나고 생각을 공유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다보니 공동이든 전수관 단독이든 다양한 기획거리가 많이 생겨 일하기가 한층 더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예술인들 스스로 예술 간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또한 이종 장르간 협업을 활성화시키는 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연극 등이 한데 어우러져 한 가지 작품을 만든 <매창>.

가곡전수관 조순자 관장은 "이제 예술인들이 하나만 잘해서 먹고 사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한 분야에 대해 남부럽지 않은 깊이 있는 식견을 갖추는 것을 기본을 하되, <청춘극장>에 출연하는 조수연 가인처럼 새로운 장르를 체험하고, 다양한 문화예술 작업 방식을 체득해 나가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역시 이러한 탈장르화와 이종 장르간 협업 추세에 발맞춰 '다원예술지원정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이종 장르 간 협업이 새로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다른 장르에서 각자가 맡은 본연의 일과 협업을 병행하다보니 연습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 이보다 더 안타까운 점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해도, 작품이 꾸준히 공연이 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 다는 점이다. 한 작품이 끝나고 다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각 단체와 개인별 스케줄과 시간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게 돼 많은 제약이 따른다.

더불어 많은 예술단체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작업하다보니 작품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지난해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가 전국연극제 대상을 받은 이후 경남도로부터 도내 순회공연 제안을 받았지만, 작품제작비보다 턱없이 적은 지원액, 그리고 '남해안별신굿', '마루' 구성원들과 연습 및 공연스케줄 확보가 어려운 점이 발목을 잡은 것이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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