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바람난 주말] (44) 창녕 오일장

"그럼 택배 아저씨한테 갖다 달라 하면 되잖아." "쌀은 마트에서 나지."

다섯 살배기 아이에게 택배 아저씨는 산타할아버지다.

며칠 전 엄마에게 졸랐던 장난감도 집으로 떡하니 가져다준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에게 마트는 종합선물세트다. 과자며 아이스크림이며 없는 게 없다. 덕분에 아이는 쌀이며 과일이며 죄다 마트만 가면 척척 나오는 줄 안다.

바람은 매섭지만 아직은 외출이 두렵지 않다.

수확의 계절, 가을은 풍성하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는 건 없는' 시골 장터에서 추억을 만들고 싶어 떠난 곳은 창녕 오일장(창녕군 창녕읍 교하리 263-12).

창녕 오일장 풍경.

달마다 3·8·13·18·23·28일에 장이 선다. 도심의 마트는 24시간 연중무휴 불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린다. 언제든 오시기만 하라는 상냥한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시골의 오일장은 다르다. 5일에 한 번 올 테니 그때 필요한 것은 사고 아쉬워도 5일 뒤를 기약하라고 한다.

5일에 한 번 오는 대신 없는 게 없다. 주차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조금 서둘러 온 덕분인지 어렵지 않게 인근 공터에 주차를 했다.

창녕 오일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교하리에 길게 자리한 오일장은 끝에서 끝까지 구경하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꽤 시간이 걸린다.

예전부터 고추와 마늘 물량이 많은데다 다른 곳보다 저렴하여 1980년대만 해도 대구·밀양·진주 등지에서 완행 첫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지금도 김장철이 다가오면 더욱 활기를 띤단다.

더 이야기를 보태자면 창녕은 구한말 보부상들의 주요 활동지역으로 영남지방 상업에 큰 역할을 담당했는데 창녕장은 경상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 중 하나로 손꼽혔다.

장터는 크게 3구역, 즉 상설 전통시장인 창녕시장과 시외버스터미널과 옛 공설운동장 인근으로 나뉘어 있다. 주요 장터는 1947년 개설된 술정리의 창녕시장이고, 시외버스터미널 옆 길가로 들어서는 작은 장은 오리정 난전이라고도 불린다. 옛 공설운동장 주변에 서는 장에서는 창녕군의 대표 농산물인 고추와 마늘만 거래된다.

"우리 집만 장사가 잘돼서 우짜노? 고맙고 감사합니대이."

막 '마수걸이'를 한 채소 장사 할머니의 목소리가 달뜬다. 구수한 시골 냄새와 함께 떡집과 만두·호빵·수육 등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따사롭고 정겹다.

이젠 사람 손이 필요없이 저절로 움직이지만 투박한 검은색의 뻥튀기 기계가 부지런히 돌아가고, 막 잡아온 생고기들이 그 자리에서 쓱싹 잘려 손님들에게 팔려나간다.

해산물도 '싱싱'

시골장터에 내놓은 물건들은 다른 건 몰라도 싱싱하고 살아 있다.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덤을 챙겨주는 모습에 "많이 파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하고, 직접 기른 거라며 깎는 것을 단칼에 잘라 버리시는 할머니의 단호함에 머쓱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시골장터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르다.

오일장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주전부리다. 우선 창녕 오일장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수구레 국밥이다. 한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먹고 나서 더 유명해진 수구레 국밥은 창녕의 대표 메뉴가 됐다. 곳곳에 원조라는 이름을 붙인 수구레국밥집이 자리를 잡고 있고, 가게 밖으로 나온 솥에서 펄펄 끓는 국밥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구경거리다.

따뜻한 어묵 국물도, 설탕이 잔뜩 뿌려진 팥빵과 식혜, 손수 만드는 돈가스와 옛날 과자까지 눈이 절로 간다. 어느새 양팔이 무겁다.

방심하고 있다가 뻥!

◇먹을거리

△수구레 국밥 = 수구레는 소의 가죽 안쪽의 아교질 부위다.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의 콜라겐 덩이. 소 한 마리에서 2kg 정도 나온다. 지방이 적고 콜라겐과 엘라스틴 등이 많아 관절 기능을 개선하는 효능이 있으며 열량이 낮아 비만 예방에도 좋다. 식감이 좋아 음식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끓여서 국밥을 해먹거나(수구레 국밥), 술안주로 먹기도 한다.

장날이면 노점에서도 수구레를 팔고 집집마다 사람들이 붐빈다. 수구레 국밥을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주인장은 먼저 끓이던 국밥을 주문량만큼 따로 담고 수구레를 넣고 다시 한번 팔팔 끓이고서 손님상에 올린다. 선지와 우거지, 콩나물 그리고 수구레가 담긴 국이 푸짐하게 놓였다. 반찬은 따로 없다. 깍두기와 양파가 전부다.

하얀 김을 헤집고 국물을 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얼큰하다. 고백하자면 원래 선짓국을 잘 먹지 못한다. 그런데 선지가 주는 특유의 비린내도 없고, 질겅질겅 씹히는 수구레의 질감도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그리고 넉넉한 건더기까지 날이 추워지면 더욱 생각날 듯하다.

장터구경하고 먹는 뜨끈한 수구레 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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