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졌다. 가을이 우리 곁에 왔음을 만끽하기도 전에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며칠 전부터 우리 집엔 보일러를 돌리기 시작했고, 집안에서도 긴 옷을 입게 됐다. 두꺼운 겨울 이불도 꺼냈다. 외출할 때 입는 옷 또한 한결 두꺼워졌다. 추워지니 밖으로만 옷을 껴입는 게 한계가 있어 난 내복을 다시 구입했다. 애 낳고 산후조리한다고 잠깐 입어보고 그동안 내복은 찾지도 않았는데, 유달리 춥게 느껴지는 날씨 때문에 지갑을 열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내복을 입지 않았다. 특히 대학 시절은 추운 겨울을 내복 하나 걸치지 않고 보냈다. 옷 입은 스타일도 이상해지고 왠지 내가 구식이 된 느낌이랄까. 무슨 오기였는지, 추워서 밖에서 오들오들 떨지언정 입지 않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 그렇게 뽄 지다가 얼어 죽는다이!"

그래도 그땐 추운 것보다 내복 입는 게 더 싫었다. 예쁘지 않은 색깔, 취향과 전혀 맞지 않는 레이스, 두꺼운 천까지. 맘에 드는 부분이 없었다. 두껍고 투박해 뚱뚱해 보이는데다, 여자 것은 빨강이나 분홍색이어서 어쩌다 소매나 바지 사이로 드러나기라도 하면 어찌나 부끄럽던지. '이걸 입느니 그냥 떨고 말지.'

하지만 스타일만 생각하고 안 입기엔 내복의 효용은 생각보다 크다. 보온 효과가 높아서 착용했을 경우 체감온도가 3~5도나 올라간다고 한다. 내복을 입고 실내 온도를 3도씩 낮추면 에너지 비용이 연 1조 원 가까이 절약된다는 통계도 있다.

건강에도 좋다. 실내온도가 너무 높아 공기가 건조해지면 코 안의 점막이 마르는 탓에 세균과 먼지를 걸러내지 못하는 반면, 내복을 입고 온도를 낮추면 적절한 습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갔을 때 큰 온도차로 몸에 부담이 되는 것을 막는 가장 손쉬운 방법도 내복 입기다.

찬찬히 살펴보니 요즘 내복이 참 많이 바뀌었다. 속옷인지 겉옷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얇고 세련된 내복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런 내복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안 입고 떨지 말고, 입고 따뜻하게 보내자.'

   

실제로 입어보니 얇아서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표시도 안날 정도로 맵시도 살고, 참 따뜻해졌다. 이런 저런 기능이 포함된 내복도 많아졌다. 얇은 천이 몸에 밀착되도록 만들어진 '보디핏 내복'에서부터 우아한 색과 무늬의 패션 내복, 피부 자극을 줄이는 친환경 내복, 마찰로 열을 내는 발열 내복까지 등장했다. 특히 발열 내복이 대세. 젊은 층에서도 내복 같지 않은 이 발열 내복이 인기란다. 내복 역할을 해주면서 스타일링에도 융통성이 생긴 것이다.

마침 기온도 뚝 떨어졌으니 건강과 환경, 경제에 두루 보탬이 되는 내복 입기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이젠, 내복을 입어도 뽄쟁이의 각선미는 그대로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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