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정년퇴임 앞두고 재회한 사제지간, 대안학교 법인 이사장·학교장으로

나의 교직생활 마지막 정년퇴임 학교인 합포고등학교 재직 때의 일이다.

스승의 날이라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학교에 꽃바구니를 든 참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선생님! 저 마산여상 ○○회 졸업생 이연줍니다."

그렇게 반갑게 꽃을 안기며 찾아온 제자에게 야속하게도 나는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일년내내 말썽 한 번 부리지도 않고 자신의 할 일만 성실하게 하는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 학급 담임도 맡지 않고 교과담임만 맡은 교사에게는 그래서 특별한 제자가 없다.

학교임원을 맡거나, 성적이 특별히 좋거나 혹은 나쁘지도 않은 학생, 또 특별히 선행이나 문제가 될 일을 저지르지 않는 평범한 학생(?)은 세월이 지나도 교사의 기억에 별로 남아 있는 게 없다. 그것도 일주일에 30시간 정도를 두서너 과목을 맡아 하던 그 시절에는 더더구나 그랬다.

대안학교 법인 학교장의 33년 전 제자이자 이사장인 이연주 씨. /경남도민일보 DB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정년퇴임을 했고, 어쩌다 공립 대안학교를 설립하는데 TF팀장을 맡아 보수도 없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추천한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청으로 대장암 수술을 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몸으로 '대안학교지원센터장'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이름으로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정년퇴임을 한 사람은 공립학교에 공식적인 직함으로 일 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채식도 하고 몸 관리도 해야 하는 기간에 신설학교, 환경호르몬이 남아있는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은 어쩌면 목숨(?)을 건 행위이기도 했지만 설립을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업보려니 생각하고 그런 삶을 시작했다.

당시 기숙형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랬듯이 퇴근도 일요일도 없이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공립대안학교. 그것도 기숙 형이라니…. 성적이 좋지 않아도 되고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 체벌은 물론 징계조차도 스스로 회의에서 결정하는 그런 대안학교라는 소문이 나자 지원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자퇴를 한 학생, 죽어도 학교가 싫다는 학생들조차 적응도 잘하고 재미를 붙이는 모습을 보고 부모들은 너도나도 아들딸을 데리고 입학을 신청했다.

이 학교에 기숙을 하면서 민주화운동에 함께했던 김상열 선생님과 시간이 되면 가끔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곤 했다. 그러다 이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듬어 줄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이런 소식을 들은 나를 찾아왔던, 지금은 대학생을 둔 어머니가 된 제자 이연주가 적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며 시작한 게 보리학교(전 별초학교)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부림시장 입구 3층에 문을 연 이름은 학교지만 정규 교육과정도 없고 교과서도 정해진 게 없었다.

'학교가 싫은 아이들, 마음 붙일 곳이 없는 학생들은 다 오너라!'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이 무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시간만 나면 야외로, 산으로, 바다로 나갔다. 시장에 문을 연 보리학교는 필자의 제자가 전세자금과 월세를 책임지고 또 상근자임금과 경비까지 후원해 주는 바람에 학교는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찾아갔다. 이런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방학이면 제주도로 지리산으로, 독서나 그림공부도 하고 상담교사를 초청해 학부모와 함께하는 자리도 만들었다.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을 따로 지도해 검정고시를 치르게 했다. 예상외로 1년이 지나 3명의 학생이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대로는 안 된다. 제자 한 사람에게 이런 짐을 지우는 게 옛 스승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생각하다 떠오른 게 '법인으로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제자를 법인 이사장으로 그리고 몸으로 봉사하는 선생님과 물적인 지원을 해주시는 이사들이 하나가 돼 지난여름 드디어 '가온누리센터, 보리학교'로 법인이 허가가 나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33년이 지난 지금 이 자랑스러운 제자와 나는 사제지간이었던 사이가 현재는 법인 이사장과 학교장이라는 사이가 된 사연이다.

나이가 들어 찾는 이가 없는 노후는 더더욱 외롭고 쓸쓸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와 함께하는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대안학교를 열어 함께 하는 제자를 둔 나는 참 행운아다.

어렵게 공부했으니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면서 살겠다는 이런 착한 제자의 기특한 삶을 경남도민일보 〈피플파워〉(11월호)는 그의 선행을 'Happy 나누는 사람'에 자세히 소개해 놓았다.

이연주 이사장의 꿈이 더더욱 영글어지도록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며 살겠다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참교육(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tistory.com)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