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을 찾아서] (23) 김영일 남해 보물섬마늘작목회 회장

바다는 푸르고 하늘은 높고 햇살은 화사했다. 구름 사이로 해가 숨어 잠깐잠깐 그늘이 지기도 했지만, 그것조차도 눈앞에 펼쳐진 눈부신 풍경을 가리지 못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이날은 경남 전체적으로 바람이 약간 부는 날씨였지만, 남해군 서면 남상리 김영일(69) 씨 마늘밭에는 '약간'이 아니라 바람이 마구 휘몰아쳤다. 하지만, 살짝 짭조름한 내음을 품은 기분좋은 바람이었다.

탁 트인 야트막한 언덕 위에 펼쳐진 밭에서 마늘은 그렇게 바람에 실린 바다와 하늘을 먹고 자라고 있었다.

남해군 보물섬마늘작목회 김영일 회장은 "여기 해풍이 부는 곳에 심은 마늘과 인근 산 뒤에 심은 마늘은 자라는 속도가 다르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젊을 때 배를 탔다.

김영일 남해 보물섬마늘작목회 회장이 마늘밭을 살펴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이 마을은 반농 반어업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배를 타고 고기를 잡다가 건강 때문에 농사를 짓게 된 지 40년가량 됩니다. 현재 이곳 남상리 염해 마을에서 농사 면적이 2번째로 많고, 마늘만 따지면 서면에서 제일 많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주로 1000평(3300㎡) 이하 소규모로 마늘 농사를 짓습니다."

김 회장은 벼 4600㎡(1400평), 마늘 8600㎡(2600평) 농사를 짓고 있다. 5000㎡(1500평) 이상 본격적으로 마늘 농사를 지은 지는 33년 됐다.

김 회장의 마늘은 유독 크고 알맹이가 깨끗하며 흠이 없다. 그래서 다른 마늘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가격을 받는다. 김 회장은 6개월 전인 지난 5월 수확해 집에서 먹으려고 보관해 둔 마늘을 보여줬는데, 아직 윤기가 흐르고 깨끗한 것이 수확한 지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69세 나이가 무색할 만큼 의욕과 건강함이 물씬 풍기는 김 회장은 고품질 마늘의 비결로 '차별화된 재배 방법'을 내세웠다. 그리고 "눈앞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밝힌 고품질 고가 마늘의 비결은 바로 '마늘종 절단'이다.

마늘은 보통 9월 25일~10월 10일 사이 파종한다. 25~30일이 지나면 비닐을 씌운다. 싹이 올라오는 곳에 맞춰 비닐에 갈고리로 구멍을 뚫어줘야 한다.

다음 해 봄 마늘대 위로 마늘종이 올라온다. 마늘종이란 마늘속대 또는 마늘싹이라고도 하는데, 장아찌나 볶음 요리로 만들어 먹는 마늘의 꽃줄기를 말한다. 보통 마늘 농가에서는 마늘종이 30㎝가량 자라면 마늘대 위에서부터 아래로 2~3잎 부분에 침을 찔러 마늘종을 뽑아낸다. 그 마늘종은 마늘 농가의 또 다른 수입원이 된다. 물론 이 또한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 후 20일쯤 있다가 마늘을 수확한다.

그런데 여기서 김 회장의 재배 방법은 차이가 난다.

김 회장은 마늘종이 2~5㎝ 보이면 마늘대 제일 위에서 대를 끊어내 버린다. 마늘종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를 잘라내면 마늘종으로 갈 영양분이 아래쪽 마늘로 내려갑니다. 또 잎이 많아야 식물이 작용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제일 위에서 끊어내죠. 이러한 작업을 몇 해 되풀이하면서 우량종자를 확보합니다."

김 대표가 재배하는 마늘. 일반 마늘에 비해 두 배가량 크다.

남해군 보물섬마늘작목회 회장, 남해군 마늘연구소 이사 등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은 이런 재배 노하우를 남해군 마늘 농가들에 전파했다.

6년쯤 전에는 성공 사례로 군수 앞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남해군이 마늘 농민들에게 마늘종을 끊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남해군에서 마늘종을 끊어내는 사람은 저 혼자뿐입니다. 농가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마늘종을 팔면 돈이 되는데 그걸 외면하지 못한 거죠. 또 마늘종 판매 관련 단체들도 수익이 줄어드니 싫어했습니다."

김 회장은 "한 어깨에 두 짐을 못 진다"며 격언을 인용했다.

"마늘종을 자르면 마늘이 크고 건강해지는 것 외에도 장점이 있습니다. 일손이 그만큼 덜 듭니다. 마늘대에 침을 찔러 마늘종을 빼내는 것보다 마늘대를 끊어내는 게 훨씬 수월합니다. 마늘종 1개를 빼낼 때 마늘대 3~5개를 끊을 수 있습니다. 마늘종 선별 등 작업시간까지 고려하면 차이가 크죠. 그만큼 일손도 적게 들고, 마늘종 가격 이상으로 값도 잘 받을 수 있는데, 두 가지 이득을 함께 취하고 싶어 큰 이익을 놓치는 겁니다. 올해 남해 마늘은 ㎏당 3000~3500원을 받았는데, 저는 6000원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몇 년 이 걸렸습니다. 다른 농가 마늘은 10㎏ 한 망에 200~230개가 들어가야 1등품인데, 우리 마늘은 100~120개밖에 못 들어갈 정도로 큽니다. 또, 마늘은 윗부분이 벌어지면 상품 가치가 없는데, 우리 마늘은 예쁘게 잘생겼습니다. 허허허. 이것이 바로 재배기술입니다."

물론 다른 농가들이 마늘대를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종자 개량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금세 판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몇 년간 노력한 후에야 2배 가격의 고품질 마늘이 탄생할 수 있다. 여기서 행정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마늘을 공판장에 내놓지 않는다. 대신 지역 축제 등에서 고품질 마늘을 홍보, 소비자 직거래 판로를 구축한다. 소비자 신뢰를 위해 마늘 상자에는 김 회장 얼굴 사진이 인쇄된 명함을 함께 넣는다.

"마늘 실명제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환불 해주는 리콜제도 시행합니다. 하지만, 아직 클레임이나 환불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김 회장은 "소도 잘 키운다"고 자랑했다. 김 회장은 남해군 축산영농조합법인회 회장도 맡고 있다.

"소는 25년 전부터 키웠습니다. 마늘 농사를 위해서였죠. 퇴비가 필요해서 소를 키웠습니다. 제가 소를 아주 잘 키워요. 지금은 30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료 값 부담이 너무 큽니다. 농사야 시세가 안 좋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포기하고 내버려둬도 되지만, 소는 그냥 두면 굶어 죽어 버리니까 계속 보살펴야 합니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소 값이 괜찮아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내려갔어요."

김 회장은 소에서 나온 분뇨를 미생물 처리해 양질의 퇴비로 사용하고 있다.

"올해 열린 경남 축산 경진대회에 남해군 대표 소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수상은 못했지만, 군을 대표한 영광스러운 소가 우리 소입니다."

앞으로 김 회장은 마늘 건조 창고를 165㎡(50평)가량 짓는 등 시설 개선과 확충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농기계 보관 창고도 165㎡(50평)가량으로 확대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사업자금을 신청했는데, 못 받았습니다. 이런 것도 학벌을 따지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나왔다고 농사를 다 잘 짓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농촌은 어디든 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높은 분들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말만 하고 실제 농촌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김 회장은 "소득은 얼마 안 되지만, 남해군에서 일인자라는 자부심으로 마늘 농사를 짓고 있다"며 "마늘 명인 제도가 있다면 도전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추천 이유>

△박남식 남해군 농업기술센터 마늘팀장 = 보물섬남해마늘작목회 김영일 회장은 40년간 남해마늘 재배를 하며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농가경영 안정화와 인건비 절약, 고품질 마늘생산을 위한 재배방법 개선 등 차별화된 기술력과 노하우로 마늘생산에 매진했습니다. 2011~2012년 보물섬남해마늘작목회 회장, 2010~2012년 남해군 축산영농조합법인회 회장을 맡는 등 지역 농업인의 소득 증대와 삶의 질 향상에 솔선수범하고 있습니다. 특히 탁월한 지도력으로 작목반의 위상 정립에 남다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핵심지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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