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박병진·박창화 부부

아주 따끈따끈한 부부다. 지금 이 시각에는 하와이에 있다. 10일 울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1일 오후 9시 신혼여행을 떠났다.

박병진(30)·박창화(28) 부부. 이들에게 10월 13일은 아주 특별하다. 27년 간은 여자 박창화 씨에게만 의미 있는 날이었다. 자신이 태어난 날이다.

2011년 여름날 두 사람은 지인을 통해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주선자가 소개팅 시간·장소까지 정해주고, 또 자리에 함께하는 것은 옛 이야기다. 그냥 연락처만 서로에게 던져주고, 그다음부터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두 사람은 바로 만남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남자 박병진 씨는 축구심판이다. 전국을 다녀야 한다. 생활이 들쭉날쭉하다. 대신 휴대전화, 메신저 같은 것으로 알아갔다. 물론 사진도 주고받았다. 그렇게 두어 달 시간이 흘렀다. 남자 어머니는 아들로부터 얘길 들었다. 얼굴도 보지 않았지만, 연락을 이어가는 아가씨가 궁금했다. 아들에게 "저쪽도 마음이 있는 것 같으니 전화 연락만 하지 말고 직접 한번 만나봐라"고 권유했다.

   

아들은 마침내 첫 대면의 시간을 마련했다. 그게 2011년 10월 13일이었다. 여자 생일이었다. 그 하나만으로 첫 만남 자리는 훈훈할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케이크를 마련해 어색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남자는 이 자리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여자 눈에는 이 남자 외모가 눈에 썩 들어오지는 않았다. 심판이라는 직업 특성상 늘 그라운드 뙤약볕에 있다 보니 남자 얼굴은 늘 그을려 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러한 외모는 중요치 않았다. 여자는 눈을 마주치며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포근함을 느꼈다.

그날 이후 바로 교제를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한 달 후 본격적인 만남을 이어갔다.

남자가 전국을 떠돌기 때문에 함께할 시간이 적었다. 하지만 아주 다행스러운 점이 있었다. 여자도 평소 축구·야구·농구 같은 스포츠를 매우 좋아했다. 스포츠 싫어하는 여자친구라면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투정만 늘어놓았을 것이다. 여자는 그런 내색 없이 늘 응원해 줬다. 전라도 영광·목포, 강원도 태백 등 먼 길 마다치 않고 경기장을 찾았다. 남자는 감동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존중해주고, 배려해주고, 지지해주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감정을 키워나가는 동안 남자 집에서는 결혼 얘길 꺼내기 시작했다. 남자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서는 양가 상견례 자리를 마련했다. 의도했던 것이 아닌데, 또 그날이었다. 10월 13일. 여자가 태어났고, 27년 후 두 사람이 처음 만났고, 또 1년 후 양쪽 부모가 처음 만난 날로 남게 됐다.

   

그렇게 결혼 날짜까지 잡았다. 아, 그런데 프러포즈를 하긴 했는데, 좀 많이 늦었다. 결혼식 이틀 전에야 펼침막 걸고, 영상·음악 틀고, 편지로 마음 전하는 청혼을 할 수 있었다.

여자는 고마웠고, 남자는 미안하면서 또 고마웠다.

여자는 남자에게 한 가지 불만이 있다. 그라운드에서는 망설임 없는 판단을 하는 심판이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물건을 하나 사도 빨리 결정하지 못한다. 좀 우유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도 스스로 인정하며, 여자가 똑 부러져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신혼집은 김해 장유에 잡았다. 앞으로 남자는 집에 들어올 수 없는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할 것'을 약속한 두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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