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바람난 주말] (44) 의령 봉황대와 일붕사

세상이 가을로 가득 찼다. '만추'의 풍경은 아이러니하다. 붉디 붉은 단풍은 화려함을 뽐내지만 발밑에 쌓이는 낙엽은 고독과 쓸쓸함을 자아낸다.

아슬아슬한 절벽 아래로 곱게 단풍이 들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본 절벽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거대한 암산,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기암절벽 봉황대. 그리고 그 아래 자리 잡은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일붕사. 그곳의 가을을 찾아 떠났다.

가을은 낙엽의 두께만큼 깊어지고 있는 것일까?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낙엽 눈이 내린다. 생명을 다한 낙엽들이 조그마한 바람에도 쉬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힘없이 흩날린다.

그리고 도착한 봉황대 앞. 노란 은행잎과 잿빛의 기암절벽, 그리고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줄 선 돌탑이 절 안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봉황대 앞 노란 은행잎과 잿빛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풍경. 그리고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줄선 돌탑이 눈에 띈다.

깊은 가을 속의 사찰은 고즈넉함을 더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는 인경소리가 청아하다.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들으며 느릿느릿 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느 절과 확연히 다른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둔탁한 물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폭포가 하염없이 낙하하고 있다.

일붕사가 자리한 봉황산은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 장군의 첫 요새지로 신라 최고의 군부대였던 봉황대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리고 서기 727년 신라 성덕대왕 26년에 혜초 스님이 중국과 인도의 불교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오던 중, 꿈에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절벽에서 지장보살님이 환하게 웃으며 이곳에 호국영령들을 위로해 줄 불사를 하면 훗날 큰 보배가 될 것이라 했다. 이에 귀국하는 길로 성덕대왕께 고하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 헤매다가, 꿈에 본 기암절벽과 모습이 흡사한 이곳 봉황산에 사찰을 건립했다. 당시 성덕대왕의 이름을 따 성덕사라고 하던 것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다.

폭포 중간쯤의 높이에 독성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온갖 잡념을 떨칠 수 있으려나? 오롯이 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가을. 절벽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은 독성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괜스레 마음이 경건해진다.

일붕사의 제1 동굴법당인 대웅전 내부. 그 넓이가 1260㎡, 높이가 8m에 이른다.

그리고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인 무량수전과 대웅전. 제1 동굴법당인 대웅전은 그 넓이가 1260㎡에 이르고 높이가 8m이다. 대웅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제2 동굴법당인 무량수전도 300㎡에 이른단다. 동굴법당이 주는 신비로움에 한참을 둘러보았다.

극락전으로 향하는 길은 가을의 절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쩜 이리 예쁠까? 총 천연의 붉은색은 조금씩 하늘로 가까워질수록 새빨개지다 이내 앙상한 나무로 변해 있다.

가끔 들리는 인경소리뿐. 세상은 조용하고 적당히 숨은 차오르고 단풍은 눈이 부시다. 극락전은 연못 한가운데 지어졌다. 외벽 전체를 금단청으로 지어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차분히 이 가을을 보내고 싶다면, 이번 주말 사찰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 봉황대 = 일붕사 입구 바로 옆에서 위엄을 뽐내는 봉황대는 한마디로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일대 장관이다. 금강산 절경의 부분 축소판이라 부른다 하니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봉황대를 찬찬히 감상해 보길.

절벽을 옆에 끼고 딱 한 사람씩 오를 수 있을 만큼의 좁은 돌계단이 나 있다. 낙엽 때문에 발밑 땅이 보이지 않는다. 돌계단 옆으로 세워놓은 지지대를 잡고 한 발씩 걸음을 옮기면 된다. 암벽 사이로 자연 동굴이 하나 있고 이 동굴을 지나면 좁은 석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 석문으로 간신히 빠져 나서면 또다시 동굴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는 사시사철 철철 넘쳐 흐르는 약수터가 있다. 봉황대 중턱에 약간의 평지를 깎아 누대를 하나 마련해 놓았다. 이곳이 바로 봉황루.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예전 인근의 유생들이 잦은 시화 모임을 했다고 하니 지금은 가고 없는 옛 사람들의 풍류를 잠시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 찾아가는 길

△창원 방면에서 = 남해고속도로 함안 IC → 법수 → 정곡 → 지방도 1011번 이용 → 궁류(평촌) → 일붕사.

△진주방면에서 = 남해고속도로 의령 군북 IC → 의령 → 국도 20번 이용 → 정곡 → 지방도 1011번 이용 → 궁류(평촌) → 일붕사.

△버스를 이용한다면 = 의령시외버스터미널에서 궁류면 버스로 궁류면 평촌리에서 내림. 걸어서 5분.

/글·사진 최규정 기자 gjchoi@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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