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제사나 손님을 치르는 등 '큰장'을 보자면 마산의 부림시장이나 어시장을 가야 했다. 시내버스로 30분쯤 걸리는 당시로서는 제법 먼 거리였다. 어머니가 마산으로 장보러 갈 낌새라도 보이면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기며 먼저 채비를 했다.

왕복 1시간 거리에 멀미까지도 감수했던 것은 부림시장에서 팔던 우동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우동에 고명으로 얹어 주던 튀김가루 때문이다. 지금이야 6·25 떡볶이를 비롯해 다양한 음식점이 몰려 있지만, 당시 부림시장에는 우동·국수·김밥 등을 파는 좌판 몇 곳이 전부였다.

심심한 멸치 국물에 통통한 우동면을 말고 채썬 파와 튀김가루, 그리고 간장 양념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다. 우동의 모양도 단골가게의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튀김가루만큼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바삭하고 몽글몽글한 튀김가루가 짭조름한 국물을 머금었을 때의 그 맛은 설익은 미각과 호기심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적어도 당시에는 세상에 그보다 맛있는 음식은 없었다.

튀김가루와 유부가 잔뜩 얹어진 우동.

20대가 되어서야 그 오묘한 음식의 실체를 알게 됐다. 튀김 가게에서 튀김을 하고 남은 찌꺼기를 모아 재활용한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도 튀김가루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값싼 식재료란 걸 알게 된 이상, 오히려 듬뿍 얹어 먹었다. 30대에 이르러서는 좀 더 깊은 내막까지 알게 됐다. 튀김가루를 고명으로 사용한 것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일본에서는 이를 '덴카스(天かす)'라 부른다. 우동뿐만 아니라 소바, 라멘, 오코노미야키, 다코야키 등 다양한 일본 대중음식의 부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40년 정도 튀김만 만들어 온 일본의 한 장인이 밀가루 반죽에 껍질째 으깬 새우를 넣고, 이를 붓에 적셔 고온의 참기름에 뿌려 꽃이 만개하듯 만든 튀김가루도 먹어봤다. 30년 넘게 각인되었던 튀김가루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하지만 그 옛날 부림시장에서 만난 튀김 찌꺼기가 훨씬 맛있다. 내게는 이 음식이 육신의 허기보다는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고, 휴식과 안도감을 주는 '솔푸드(soul food)'이기 때문이다. 솔푸드의 기억은 그만큼 강렬하고 생명력이 길다.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도 이를 이길 수는 없다.

패스트푸드 전문점을 가면 서너 살도 안된 아이들이 프렌치 프라이(감자 튀김)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거대 식품회사만 아는 첨가물의 풍미와 기름의 고소함은 거부하기 힘든 맛임에 분명하다.

그 유혹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내 경험에 비추어 그들의 예정된 미래가 충분히 짐작되기 때문이다.

프렌치 프라이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된장찌개는 결코 맛있는 음식일 수 없다. 신선한 양배추의 은근한 단맛과 완숙 토마토의 상큼한 신맛 따위는 그저 싱거울 따름이다.

40년 장인의 솜씨가 시장통 튀김 찌꺼기 앞에서 무너지듯, 프렌치 프라이가 솔푸드로 각인된 아이들에게는 그보다 맛있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의 아이가 자연이 베푸는 은혜로운 맛과 향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프렌치 프라이 같은 가공식품만큼은 절대로 쥐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좀 천천히 접해도 아무 상관 없는, 아니 늦으면 늦을수록 더 좋은 음식이다.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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