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맨투맨 티셔츠 하나 사주면 안 돼?"

한창 멋 부리는 데 맛을 들인 딸 아이가 또 옷을 사달란다. 수학여행 가서 입을 옷이 없다며 투정 부리는 걸 못마땅해 하며 얼마 전에 옷을 샀는데,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날씨가 추워졌다며 또 옷 타령이다.

"얼마 전에 샀잖아, 안 돼!"

"그럼, 엄마가 안 사줘도 되니까 내가 모은 용돈으로 살게, 그건 괜찮지?"

할 말이 없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모은 돈으로는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무언의 허락을 해주긴 했지만, 엄마의 불편한 침묵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녀석이 참 얄밉다.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인터넷 쇼핑을 하는 딸 아이의 널따란 등짝을 짝 소리 나게 때리는 상상으로 겨우 마음을 삭이고 있는데, 글쎄, 티셔츠 하나 가격이 6만 8000원이란다.

눈이 뒤집힐 노릇이다. 나도 모르게 '야!' 하고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러고는 그 돈이면 달걀이 350개라며 하루에 한 개씩 1년 동안 먹을 달걀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노라니, "그럼 나 중학교 2학년 될 때까지 달걀 안 먹을게"라며 말문을 막는다. 아이고, 골이야. 도대체 어디서 저런 녀석이 나온 건지.

심부름이라도 한번 시키려면 더 애가 터진다. 잠시 집 앞을 나가는데도 거울을 몇 번씩이나 본다. 얇은 블라우스에 하의 실종 스커트, 바람을 전혀 막아주지 못할 것 같은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입었다 벗었다 하는 걸 인내심이 바닥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빨리 다녀오라고 해야지 입술을 삐죽거리며 나간다. 찬바람에 강판 수준으로 닭살이 돋고 연신 콧물을 훌쩍거리면서도 춥지 않단다. 아무리 사춘기라지만 경제 감각과 패션 감각이 머릿속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렵게 일관성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춘기는 좀 더 우아하게 성숙한 고민을 하는 시기이다. 그 때가 되면 딸 아이의 손을 잡고 그윽한 눈빛으로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이야, 너를 이해해, 힘내, 우리딸', '엄마, 그동안 미안했어요, 나도 잘 할게요' 이런 드라마틱한 대사로 마무리되는 훈훈한 장면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너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사춘기로 엄마와 딸은 성장통을 함께 치른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엄마인 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게 가장 평화로운 해결 방법이란 걸 안다. 하지만 머리와 가슴이 늘 같이 움직이는 건 아니다. 겪지 않아도 될 일조차 다 경험하는 아이가 미련스럽고 안쓰러워 조언을 해 줘도 간섭이 되어 고스란히 튕겨져 나오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내 방식대로 간섭해서 앞당기려 하지 말아야 한다. 소모적인 것처럼 보여도 아이한테는 꼭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책임을 지도록 도와주는 게 현명한 엄마의 역할이라는 걸 잊지 말자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