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을 찾아서] (22) 양무천 합천 영남영농조합법인 대표

"불가능합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무모한 도전입니다. 포기하세요."

합천군 가야산 중턱 해발 800m 치인리 고랭지 지역에서 여름 파프리카 재배.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조차.

하지만, 해냈다. 2001년 도입 이후 매년 100만 달러 수출을 이뤄냈다.

합천 영남영농조합법인 양무천(51) 대표는 '선도 농민'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동아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한 양 대표는 1988년 농업에 입문했다.

"당시에는 안개꽃의 여름 재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고랭지 안개꽃을 처음 시도했습니다. 재미를 많이 봤죠. 올림픽으로 수요가 급증했고, 1989년에 일본 수출까지 했습니다."

농촌진흥청의 한 책자에는 치인리가 여름 고랭지 안개꽃의 시조마을이라고 등록돼 있을 정도다.

꽃 재배를 하던 양 대표는 IMF 외환위기때 파프리카로 작목전환을 했다.

 대표의 성공 사례에 재배 지역이 남원·대관령 등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3~4년 있으니 가격이 하락했습니다. 1994년 백합을 재배해 수출, 농업수출인상을 받고, 당시 청와대 성공 사례 발표회에 참석해 대통령과 장관 앞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IMF 외환 위기가 닥치며 꽃 소비가 급격히 줄었다.

양 대표는 대체 작물을 찾기 시작했다. 여름 딸기도 시도해봤지만, 날씨 탓에 너무 물러져 상품성이 나빴다. 여름 무·배추도 시도했다.

그 무렵 꽃을 수입하던 일본의 한 바이어가 파프리카 씨앗 10개를 가져왔다.

"무언지 몰랐죠. 단순히 '먹는 건가' 싶었습니다. 뭔지도 모르고 일단 키우니 열매가 열리더군요."

시장 조사를 위해 농산물 시장을 돌아다녔다. 상인들도 파프리카라는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농업기술원·농업기술센터 등 관계기관과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보통 파프리카는 12월~다음 해 6월 정도에 생산된다. 양 대표는 그 나머지 기간, 즉 6~12월에 수확하려고 마음먹었다. 고랭지라는 지리적 특성상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반대, 걱정, 우려, 거부.

모두의 반대로 암울했던 어느 날 합천 농업기술센터 원예계장이 "꼭 하고 싶으면 혼자 해보라"고 했다. 신규 개발 작목비로 3000만 원의 지원을 받았다.

"수출이 주목적인데, 혼자서는 면적이 작아 불가능했습니다. 주위 농가들을 설득했죠. 씨앗을 사서 모종으로 키워 줄 테니 심어보자. 꽃보다 나을 것이다. 결국, 주위 26 농가가 함께 시작했습니다."

재배기술 교육, 선진지 견학, 수출협의 등을 수차례 하며 재배 중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파악했다. 고랭지 여름철 기상을 비교·분석해 겨울 재배와 다른 점을 파악하기도 했다.

2001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양 대표의 성공은 또다시 소문이 났고, 전국에 고랭지 여름 파프리카 재배가 확산됐다.

높이 6.5m의 가천리 유리온실 안에 양액재배로 기르는 파프리카가 열려있다.

다른 농가는 토양 재배로 시작했지만, 양 대표는 처음부터 양액 재배를 했다.

또, 양 대표는 다른 농가들이 초기 비용 부담으로 비닐온실을 많이 선택하는 데 비해 유리 온실을 선호한다. 온실은 높게 짓는 편이다. 그것은 네덜란드 견학 등을 통해 습득한 지식이다. 1994년 해발 800m의 치인리에 유리온실을 지었다.

"연구기관 등에서 산에 높은 유리온실을 짓는다고, 무모하다고 욕을 많이 했지만, 우겨서 지었습니다. 당시 경남에 유리온실은 몇 곳 없었습니다. 유리온실은 비닐온실보다 경쟁력에서 앞섭니다. 초기 비용은 많이 들지만, 비닐은 소모성으로 3~5년마다 갈아야 하기 때문에 재투자비가 자주 들고, 그때마다 인건비도 많이 나가죠. 유리는 20년은 괜찮으니까 재투자비가 적습니다. 또, 빛 투과율도 높아서 생산성이나 품질 향상에 장점이 많습니다. 빛을 잘 받으니 색이 아주 맑게 나옵니다."

온실 높이는 3.6m. 당시 적정 시설 기준을 벗어난 높이였다.

"관계기관 등에서 온실이 너무 높아 내려앉는다고 걱정했습니다. 검사가 안 나와서 고생했죠."

그 후 3.6m의 온실을 그대로 2m 더 올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공업체에서 반대했다. 2m를 더 높이면 온실이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양 대표는 "무너져도 좋으니 해보자"고 했다.

"대부분 온실이 낮아 내부 면적이 작으면 연료비 등이 적게 들어 경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높은 쪽이 적게 들어요. 또 내부 공기 순환이 잘 되기 때문에 습도 조절이 용이하고, 환경도 더 좋습니다."

가천리 유리온실 전경.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양 대표는 2007년 다섯 농가로 농업법인을 조성해 가천리에 유리온실을 지었다. 높이 6.5m. 국내 파프리카 유리온실로는 제일 높은 편에 속한다. 2억 원을 들여 복합환경제어시스템 등을 설치했다. 재배 기술도 중요하지만, 시설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 큰 돈을 투자했다. 이 시스템은 바람이 불면 창을 닫는 등 온도·습도·바람·햇빛 등을 고려해 온실을 제어한다. 생산온실은 2만㎡(6000평), 육묘장은 2000㎡(600평)이다. 이곳에서는 부인 조효랑(51) 씨와 외국인 노동자 9명이 함께 일한다.

"선도농이라고 주위에서 말을 많이 하지만, 힘든 건 똑같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시도하는 만큼 시행착오도 그만큼 더 많이 겪을 수밖에 없지요. 여름 파프리카를 처음 도입하고 전국에서 견학을 많이 오는 바람에 우리 온실에 병이 생겨 다른 농가들은 농사가 다 잘됐는데, 우리만 망친 적도 있습니다."

양 대표와 주위 농민들이 무엇보다 신경 쓰는 것은 '품질'이다.

"수출 농가의 제1 철칙은 농약 안전성 확보입니다. 일본에서는 합천 파프리카, 어디 파프리카 하고 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한국 파프리카'죠. 합천 파프리카가 잔류농약 검사에 걸리면 한국 파프리카 전체의 수출이 중단돼 대한민국 파프리카 농가가 모두 무너집니다."

합천 파프리카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개인 농장이 있는 치인리는 해발 800m, 영남영농조합법인 시설이 있는 가천리는 해발 400m입니다. 그만큼 주야 온도 차가 큰 지역입니다. 낮 동안 식물이 만든 탄수화물이 과실에 당으로 저장이 많이 되기 위해서는 온도 차가 커야 합니다. 결국, 환경적 차이가 기본적인 맛의 차이를 만듭니다."

처음 26 농가 중 일부는 파프리카 재배를 포기하고, 현재는 12 농가가 '고랭지 수출 파프리카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곳 여름 파프리카는 1월에 씨앗을 심어 모종을 키워 3월 정식을 한다. 그러면 6~12월까지 수확할 수 있는데, 지난해에는 올 2월까지 수확했다. 올해는 내년 5월까지 출하할 예정이다. 수확한 파프리카는 절반가량이 일본으로 수출된다.

"작기를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여름에는 시세가 매우 좋지 않아서 작기를 변경, 내년에는 10월 초 첫물을 따도록 변경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해도 다른 파프리카에 비해서는 수확 시기가 빨라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양 대표의 '수출 확대'라는 꿈은 개인적이면서도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대한민국 파프리카가 1억 달러 수출을 이뤄내는 것이 꿈입니다. 2015년이 목표입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이 1억 달러 정도였는데, 곧 파프리카로 그 목표를 이뤄내고 싶습니다."

<추천 이유>

△강황수 합천군농업기술센터 원예담당 = 영남영농조합법인 대표 양무천 씨는 1988년부터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서 장미와 백합을 처음 도입해 기술을 보급하면서 10년 이상 일본으로 수출해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발생 이후 화훼가격 하락으로 마을 전체 농가가 어려움을 겪자 이를 대신할 작목을 찾기 위해 타 지역 벤치마킹, 자료수집과 검토 끝에 국내 처음으로 고랭지 여름 파프리카를 도입해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정착시켰습니다. 매년 100만 달러 이상의 파프리카를 수출해 합천군 최고의 수출단지로 자리 잡았고, 지역 내 소득작목 개발을 위해 시금치, 여름딸기, 블루베리, 춘파양파 등 다양한 작목을 시험 재배하는 선도적인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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