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지역 소비자에게 물건 뿐 아니라 문화·감성 판매 꿈꾸다

문화와 감성을 파는 백화점을 만들어가려는 이를 만났다. 그는 백화점에 온 가족이 와서 볼거리, 즐길 거리, 먹을거리, 살 거리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백화점 경력 23년, 줄곧 한 길만 걸어온 이종묵(50)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점장(상무)이 자신이 만들어나갈 백화점에 대해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지난 27일 오전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 점장은 작년 12월 신세계백화점 본사에서 마산점으로 왔다. 지난 1989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유통 분야 일을 해보고자 당시 같은 계열사였던 신세계백화점을 지망했다. 동기 대부분이 삼성전자, 삼성화재 쪽에서 일하기 원했지만, 축산학을 전공했던 그는 유통 일을 해보고 싶어 신세계백화점으로 1, 2, 3지망을 했다. 결국, 그가 원하던 대로 백화점에서 일하게 됐다.

이종묵 신세계백화점 마산점장./박일호 기자

20여 년 동안 줄곧 본사에서 축산, 식품 총괄 업무를 맡았다. 당시 축산물 담당자는 직접 새벽에 산지 우시장에서 소를 고르고, 도축장에 도축을 의뢰하고, 도축된 소를 냉장 탑차로 보내는 일까지 했다. 지역을 오가며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을 3, 4년간 이어갔고, 차츰 이러한 업무를 전문 업체가 대신하면서 이들을 관리하는 쪽으로 업무가 바뀌었다. 사원으로 입사해 20여 년 만에 임원으로 올랐다. 사원 자리에서 임원 자리까지 불과 20미터 거리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브랜드가 아닌 스토리텔링이 있는 상품 팔아야

줄곧 백화점에서 일해 온 그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백화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이제 백화점은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는 상품은 누구나 팔 수 있다. 하지만, 문화와 감성을 파는 것은 고도의 마케팅이 필요하다. 백화점은 값어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을 판매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니클로, 자라 등 한창 뜨는 ‘패스트 패션’인 SPA(Spacially store retailer Private label Apparal brand) 브랜드가 아닌 상품 자체에 진정성, 개발의도, 콘텐츠, 문화가 다 접목된 상품을 파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디자이너가 어떤 마음으로 상품을 만들었는지 ‘스토리텔링’이 되는 상품이 진정한 상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가 하나의 상품을 사더라도, 이 상품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묵 신세계백화점 마산점장./박일호 기자

그는 일본 이세단 백화점, 미국 버그돌프굿맨 백화점을 닮고 싶은 모델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세단 백화점은 ‘식(食)의 패션화’를 이룬 백화점으로,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을 위한 식품관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고 했다. 식품관이 백화점 1층 보석 매장처럼 음식을 진열해서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버그돌프굿맨은 문화를 파는 백화점으로, 뉴욕 라이프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는 유명한 백화점이다.

그는 백화점에서 진정한 유통은 머천다이저(merchandiser·상품화 계획 또는 상품기획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가 상품 기획에서 개발까지 총괄해서 하는 수준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루이뷔통 같은 브랜드처럼 머천다이저가 좋은 물건을 골라서 파는 등 상품에 대한 책임성이 커지는 형태로 바뀌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산점은 어떻게 해서 이 점장이 꿈꾸는 백화점을 구현할 수 있을까.

그는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백화점을 꾸며야 한다. 백화점이 지역민의 소비 패턴을 10∼20%가량 올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 내년 4월에서 10월까지 백화점 6, 7층을 대대적으로 손보려고 한다. 마산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브랜드를 접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외형을 키우기보다 전문관 형태로 분점을 만들려고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최근 백화점들이 백화점 내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이 함께 와서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 살 거리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테마파크, 할인점, 공연장 등 전문적인 업태를 한 곳으로 모으다 보니 규모가 큰 백화점이 늘고 있다. 마산점도 온 가족이 한번 방문해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바꾸고자 하지만, 규모를 키우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부지 문제 등으로 지금은 현재 있는 백화점을 개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점장은 ‘신세계 만의 무기’를 만들어 규모 문제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종묵 신세계백화점 마산점장./박일호 기자

동영상 ‘마산스타일’…지역민과 함께하는 이미지 확보

최근 직원들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해 만든 동영상 ‘마산스타일’이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산스타일’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크게 받은 이유로 마산에 대한 향수를 꼽았다. 통합 창원시가 되면서 ‘마산’이라는 지역이 다소 잊혀 가는데, 마산을 대표하는 자유무역지역, 마산역, 어시장 등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보고 지역민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마산스타일’이 알려지면서, 지역 상공회의소, 기업체, 고등학교 출신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동영상을 통해 자연스레 백화점 홍보와 동시에 지역에 대한 홍보도 이뤄졌다. 그러면서 지역과 함께 하는 백화점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신세계백화점 마산점은 지난 8월 개점을 기념해 백화점 내에 지역 출신 문신 작가의 조각·드로잉 작품 등을 전시했다. 지난 9월에는 지역 문화 예술을 통한 상권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창동예술촌과 업무 제휴 협약식도 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어린이재단 경남지역 본부를 통해 지역 청소년 80명에서 총 80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마산 지역 시민들과 함께하는 백화점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싶다. 지역 단체, 문화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으면 찾아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식품 쪽을 담당해온 만큼 지역 맛집을 발굴해 백화점에 유치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마산과 창원 지역의 유명한 식당과 접촉을 하기도 했다. <경남도민일보>가 발행하는 월간지 <피플파워>에 소개되는 지역 맛집을 찾아가본다고 했다. 최근 의령망개떡, 일식 라멘집을 식품관에 유치하기도 했다.

이종묵 신세계백화점 마산점장./박일호 기자

이 점장은 “최근 백화점 경향 중의 하나가 백화점에 유명한 맛집을 유치하는 것이다. 맛집을 찾는 소비자들이 자연스레 백화점 쇼핑도 하기 때문이다. 괜찮은 맛집이라면 비용 안 받고 자리를 내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 식품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식품관을 처음 열 때는 3개월 만에 다시 부수기도 했다. 돈이 100억 원가량이나 더 들었지만, 더 많은 소비자가 찾는 식품관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식품관이 중요하다”며 “마산점에는 지역에 맞게 싸고, 살 것이 많고, 신선하고, 맛있는 식품을 많이 둬야 한다. 또, 장보는 주부들이 와서 장도 보고, 떡볶이·잔치 국수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형태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전통시장과 상생하고 소비자가 ‘오고 싶은 신세계’

백화점이 전통시장과 상생하는 방안도 내놨다.

그는 “백화점은 세련된 현대적인 것을 살려서 팔고, 전통시장은 전통시장 만의 먹을거리 등을 팔면 된다. 백화점이 전통시장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형태를 함께 고민해 투자하고, 전통시장 식재료가 부족한 부분은 백화점에서 담당하게 되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이 점장은 식품 얘기를 한참 하다 식품 담당을 오랫동안 하면서 직접 식품을 요리하는 일도 잘하게 됐다고 활짝 웃었다. 웬만한 요리는 잘 해내고, 특히 육류 스테이크를 잘 굽는다고 했다. 소비자에게 식품을 팔면서 어떤 용도로 팔아야 할지는 직접 요리는 해 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매장 연관 진열에도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소비자에게 더 도움이 되는 소비 패턴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 맛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종묵 신세계백화점 마산점장./박일호 기자

이 점장은 자신의 생활을 철저히 백화점 소비자에 초점을 맞췄다. 해외 출장 시에는 필요한 식재료를 사 와서 직접 써 보고 백화점 수입을 추진하기도 한다. 마산점에 와서는 일부러 창원 쪽에 거주하기로 했다. 신세계백화점 마산점의 핸디캡이 창원 지역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인데, 창원에 거주하면서 이들의 생각을 듣고 이들을 유인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사실 그는 마산에는 연고가 없다.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지냈고 대학을 서울에서 다니면서 서울에서 계속 생활했다. 서울에 대학원서를 넣으러 오면서 백화점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그는 “대학 원서를 넣고 집에서 여비로 쓰라고 받은 돈으로 백화점 레코드 매장에 가서 LP 판도 사고, 청바지도 사고 했다. 돈가스도 그때 처음 먹어봤다. 시골에서 지내다 백화점에 가서 문화적 충격이 컸다. 어쩌면 당시 그 경험이 백화점 입사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산점 부임 당시 직원들에게 ‘출근하고 싶은 신세계’, 소비자에게는 ‘오고 싶은 신세계’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아직 그가 계획한 일의 15%가량밖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나머지 80% 이상을 더 해야 한다. 저뿐 아니라 직원의 능력, 자질을 끌어올려 계획한 일을 해나가고자 한다. 마산, 창원 지역 소비자들이 신세계백화점 마산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게 우리만의 무기를 개발하고, 이곳만의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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