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게 이런 곳] 하동 '한구자리 채울'…다문화 이주여성 위한 공동체

하동읍 공설시장에 들어서면 가운데 상설 무대가 보인다. 각종 문화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소박하게 마련한 자리다. 그리고 그 옆에 낯선 이름을 내건 건물이 보인다. '한구자리 채울'. 당장 이름만 봐서는 그 쓰임새를 짐작하기 어려운 곳이다.

"한자리에 모여 서로 도우며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고 채우자는 뜻을 담았죠. 다문화 이주여성들을 위한 공동체입니다."

이정화 하동군여성지도자회 회장이 설명한다. 그래도 선뜻 개념이 와 닿지 않는다. 내부는 언뜻 식당 같기도 하고 찻집 같기도 하다. 한쪽에 있는 음식 메뉴를 보고서야 식당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채울이 내세우는 메뉴는 △연잎밥 정식(8000원) △산채 돌솥비빔밥(6000원) △베트남 쌈(4000원) △차·음료(5000원) 등이다. 계절 음식 메뉴로 △국수(4000원) △추어탕(7000원)도 있다. 그리고 도시락 주문을 받는데, 내용에 따라 가격을 정한다.

"얼마 전 울산 동구청에서 단체로 와서 여기서 연잎밥을 먹었어요. 모두 맛있다고 칭찬이 자자했지요."

이정화 회장이 음식 맛을 자랑했다. 먼저 음식 맛이 괜찮은 식당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이 공간이 지닌 의미 절반은 알게 된 셈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이주여성 공동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지난 2011년 당시 오귀남 대표를 비롯해 중국·일본·필리핀·베트남 등에서 온 이주여성 10명이 힘을 모았지요. 장사보다는 다문화 이주여성들이 서로 모여 소통하고 의지하는 공간을 제공하자는 목적이 당연히 컸습니다."

이정화 한국여성지도자회 회장./박민국 기자

당시 '채울'은 행정안전부와 하동군이 추진하는 자립형 지역공동체 일자리 창출사업으로 지원을 받아 문을 열었다. 현재 이정화 회장은 오귀남 대표에 이어 '채울'을 이끌고 있다.

사실상 '채울'을 이끄는 중심축은 하동군 주요 여성단체 대표자 모임인 '하동군여성지도자회'이다. 회원은 19명이며, 이들은 '채울'을 위해 일정 비용을 들이기도 하고 식당에서 직접 일도 한다.

"여성단체 회장·임원들이 모여 봉사하고 투자하며 수익은 모두 이주민 여성을 위해 씁니다. 회원들이 이틀에 한 번 돌아가며 채울에 나와서 함께 일을 하지요."

채울은 여성지도자회 회장과 총무 그리고 이주민 여성 몇 명이 상주하며 일을 한다. 점심 장사를 마치면 오후부터 채울은 이주민 여성 사랑방이 된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만큼 서로 요리법을 교환하기도 하고, 한국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한다. 아울러 매실·녹차 등 지역 특산품을 판매해 작은 소득원을 삼기도 한다.

"다문화 이주여성들은 채울에서 한국어에 익숙해질 수 있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일자리를 구할 기회도 얻지요. 또 한국에 늦게 정착한 이주민들에게 좋은 상담자가 되기도 합니다."

'한구자리 채울' 전경./박민국 기자

하지만, '채울'도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수익이 목적인 장사가 아니다 보니 당연히 그 수익이 아쉽다. '채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각자 생활인이라 봉사 이상은 따로 시간을 투자할 수 없어 겪는 한계이기도 하다.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채울'은 따로 예약을 받은 게 없으면 저녁 장사도 하지 않는다.

이정화 회장은 '채울'이 더 많은 이주여성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이곳에서 수익이 이주여성 취업을 위한 교육비 지원에도 좀 더 넉넉하게 쓰이길 바란다. '밥 한 끼 드시고 가세요'라는 소박한 부탁에는 전혀 작지 않은 소망이 담겨 있다."하동을 찾는 분들께서 밥 한 끼 정도는 여기서 드셨으면 좋겠어요. 맛있고 정말 뜻있는 곳에 수익이 사용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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