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귀한 '쉼터'이자 '탁 트인 일터'

짧은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은 여성이 힘차게 걷는다. 직각으로 만든 팔을 앞뒤로 저으며 긴 보폭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그 앞으로는 털이 길고 작은 강아지가 지그재그로 뛰어다닌다. 길가 표지판에는 동물을 통제할 수 있는 목줄을 채워 다니라는 안내가 있다. 여성은 왼손에 목줄을 쥐고 있었지만, 강아지는 통제받지 않았다. 균형잡힌 걸음에 방해가 되는지, 강아지를 배려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창원시 의창구 ‘용지문화공원’에 늦은 아침운동을 시작하는 주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에 쏟아진 비 때문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은 쏟아지는 볕을 확인하자 주섬주섬 나선 듯하다. 공원 주변이 한층 밝아지면서 더워지자 잠잠했던 매미들이 울부짖는다. 호수 둘레로 잘 정돈된 길을 사람들은 저마다 속도로 걷는다. 운동이 목적인 게 분명한 빠른 걸음과 그저 호수와 주변 풍경을 즐기는 느린 걸음은 산책로에서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가끔 그 사이를 자전거가 요령 있게 빠져나간다.

창원 용지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승환 기자

도심 공원엔 영업사원의 비애도…

한적한 공원 주변은 창원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다. 주변에는 창원시청, 교육청 등 관공서가 몰려 있다. 길 건너는 ‘정우상가’를 중심으로 한 밀집상가지역이다. 근처 창원광장 주변에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마주 보고 있다. 백화점 뒤는 창원에서, 어쩌면 경남에서 가장 번화한 유흥가다. 주택가, 관공서, 상가, 유흥가 구분이 분명한 계획도시에서 공원은 당연히 있어야 할 시설이면서 귀한 시설이기도 하다.

“사장님, 좀 부탁드립니다. 지난번에 저희가…. 아니, 이번에 해야 한다니까요. 그게….”

영업인 듯하지만 한쪽 말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흰 와이셔츠에 짙은 검은색 양복바지를 입은 중년은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수첩을 뒤적인다. 그가 앉은 긴 의자에는 담배와 라이터, 작은 가방이 놓여 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저희 사정을….”

전화 상대는 또 중간에 말을 끊은 듯하다. 중년 남성 표정은 점점 어두워진다. 다시 담배를 물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호수에 더 가까운 난간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계속 통화를 이어간다. 대부분 사람이 빠듯한 일상에서 빠져나와 잠시 시간을 보내는 이곳이 그에게는 어쩔 수 없이 영업 현장이다. 전화를 끊은 그는 담배를 문 채 호수 건너편 먼 곳을 한참 바라본다.

   

제각각 자기 필요에 따라 활용되는 곳

한 번에 같은 직장임을 알 수 있는 단체옷을 입은 사람들이 공원으로 들어온다. 주변은 관공서와 사무실이 많은 만큼 식당도 많다. 주변에서 이른 점심을 먹은 이들은 느긋하게 호수 주변을 걷기 시작한다. 제법 거리가 되는 호수 둘레를 완전히 돌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식당과 가까운 공원 입구에서 직장과 가까운 공원 입구까지만 걸어도 충분한 산책은 되는 듯했다.

호수 둘레 곳곳에 있는 긴 의자에 중년 남성들이 한 명씩 자리를 정한다. 잘 차려입은 정장, 가벼운 평상복, 트레이닝복에 등산복까지 옷차림은 다양하지만 목적은 거기서 거기다. 그들은 각자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꺼내 든다. 느긋하게 흡연할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잔잔한 호수에 눈길을 맡기며 담배를 무는 시간은 이들에게 분명히 호사다. 하지만, 그런 사치를 누리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는 또 다른 사람들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긴 의자 옆에 서 있는 쓰레기통에는 흡연이 해로운 점, 남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점, 금연을 도와주겠다는 안내까지 자세하게 적혀 있다. 하지만, 안내판은 꽁초를 버리러 가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설득하지는 못한다.

   

함께 식사를 마친 듯한 아주머니들은 나란히 앉아 긴 의자를 독차지한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 미처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놓는다. 공원에 펼쳐진 넉넉한 공간에서는 그 정도 수다쯤이야 주변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창원 용지공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승환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