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유명 정치인과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중견 기업인이 주최한 이 자리에는 지역 경제계 인사들과 꽤 낯익은 오피니언리더들도 함께했다.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까지 동석이 허락된 걸 보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이 실감나는 현장이기도 했다.

모임 내용이야 별 것 없었다. 특별한 이슈 없이 그저 덕담이나 몇 마디 주고받는 약간은 무겁고 형식적인 자리였다. 주빈격인 정치인은 어색함을 해소할 요량으로 몇 가지 유머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다들 웃기는 웃는데, 그 웃음 또한 형식적이긴 마찬가지다. 나 역시 그랬다. 의미 없는 웃음 속에서 식어가는 음식들이 불쌍할 따름이었다.

사회 지도층, 직장인,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유머 강좌가 늘고 있다. 소통의 도구로 유머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뉴시스

소위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를 모신 자리는 대개 상황이 비슷하다. 그들은 쉴 새 없는 유머와 만담으로 좌중의 관심과 웃음을 끌어내려 한다. 같은 강사로부터 수업을 들었는지, 아니면 강사들이 같은 강의교재를 사용해서인지 몰라도 이야기의 소재, 도입부, 말투 등이 너무나 흡사하다. 설마 하니 공사다망하신 분들이 일부러 스피치 학원 등을 다니셨을 리는 없을 터. 리더라면 반드시 한번쯤 거치는 최고경영자과정, CEO특강, 리더십아카데미 등에서 배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더러는 유머 감각을 타고난 분도 있지만 배운 것과 타고난 것은 누가 봐도 분간이 된다.

이렇듯 배워서 써먹는 유머의 폐혜는 정작 소통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분들 수업은 나름 열심히 들었는데 스킬만 배웠다. 소통의 도구로 유머를 적절히 활용해야 하건만, 정작 소통은 온데간데없고 일방적인 자기 얘기만 난무한다. 이런 자리는 언제나 만남 그 이상의 의미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배운 유머'의 남발이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걸 잘 아는 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주목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은 어느 경우든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자의식이 강하다. 자신의 이야기에 좌중이 웃지 않을 수 없다는 정치적 관계 또한 모르는 바가 아니다. 좌중이 웃음으로써 자신의 권위가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한데 억지춘향격으로 웃고 있는 좌중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한다. 소통의 도구인 유머가 소통의 부재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감히 태클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어서? 아니다, 권력관계 때문이다.

생존 자체가 당면 과제인 삶을 살아 온 분들이니 유머감각 따위를 따로 기를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때리고 넘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에 익숙한 세대와 개콘·웹툰·SNS에 익숙한 세대는 웃음의 코드부터가 다르다. 그 차이를 몇 시간의 강의나 실습으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배운 유머를 복습하기보다는 배우려는 자세를 다듬는 것이 낫다. 권력관계를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땐 권위주의가 되지만, 이를 활용해 소통의 중재자 역할을 하면 품격있는 권위가 부여된다. 유머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좌중을 웃게 하기보다는 좌중을 말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그게 힘들면, 차라리 밥이라도 편하게 먹게 해주자.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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