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오동동 이야기] 예술과 손잡은 창동, 개념 찬 골목길로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창동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도심이 쇠락하자 창동 골목은 밤에 무서워서 다니지 못할 지경으로 변했어요. 하지만, 좁은 골목에 예술인들이 모이고 볼거리가 생기자 창동 전체가 활기를 찾고 있습니다."

창원시 도시재생과 김용운 과장이 창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몇 마디 말로 간단히 진단했습니다. 창원(구 마산) 창동은 1990년대 초반까지 화려했답니다. 사람들로 붐볐죠. 어깨 부딪치고 발이 밟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곳이었습니다. 상권이 달라지면서 거리는 한산해졌죠. 시간이 흐르자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졌죠. 덩달아 빈 점포도 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창동은 문화가 넘쳤답니다. 마산에 살던 예술가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을 오가며 낭만을 덧칠했다지요. 하지만, 거리에 발소리가 줄어들면서 최근까지 창동은 오가는 사람을 셀 만큼 인적이 뜸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창동 일대는 눈에 띄게 쇠락해갔죠. 2년 전, 창원시가 나섰습니다. 시가 창동 일대 거리와 골목길의 영광을 되찾고자 '마산르네상스' 계획을 가동한 것이지요.

지난 22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을 찾았습니다.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 아래 젊은 남녀가 가볍게 길을 걷습니다. 창동 일대는 마산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3·1만세운동과 박정희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3·15부정선거 반대 시위가 있었던 곳입니다. 또, 전두환 군사정권 초창기였던 1979년, 10월 18일 부마민주항쟁이 격렬히 벌어졌던 역사적인 거리이자 문화의 거리죠. 하지만, 인근에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이 거리에 잠시 사람들 발길이 끊겼습니다.

최근 창원시의 원도심 활성화 계획으로 사람들 발소리가 분주합니다. 창원시가 공들여 '창동예술촌'을 만들었습니다. 전국의 많은 예술가가 이곳에 모여들었습니다. 좁다란 골목길에 예술의 향기가 넘칩니다. 아기자기 모여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다 보니 하루해가 꼴딱 지나가 버립니다.

볼거리는 많은데 짧은 해가 아쉽네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니 마음이 급해집니다. 다짜고짜 창동 골목에 터 잡은 한경희 작가 작업실 문을 열었습니다. 한 작가는 기다랗고 동그란 천에 솜을 넣어 각양각색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 작가가 '패브릭 드로잉(Fabric Drawing)'이라고 이름 지었답니다.

한경희 작가.

우리말로 바꾸면 '천으로 물감을 대신한 그림'쯤 되겠네요. 회화에 천이라는 소재를 접목한 점이 눈에 띕니다. 입체적인 모습이 참 신기합니다. 색도 다양해서 60여 개가 넘는 색을 활용하고 있답니다. 기발한 생각을 얻게 된 시발점은 미국 유학시절이었답니다.

독특한 재료를 이용해 그림을 그릴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동물 꼬리를 작품에 응용해봤는데 너무 재밌더랍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 정서적 차이 때문에 동물 꼬리를 이용한 작품은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하여, 동물 꼬리를 선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작품 재료를 찾게 됐답니다. 결국, 찾아낸 재료가 천이었습니다.

그 기발한 생각을 얻은 후, 천을 동그랗게 말고 천 안에 솜을 밀어 넣어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작품을 내놓았더니 많은 사람이 큰 호기심을 가지고 보더랍니다. 입체감이 있어 여느 작품과 다른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서혜주 작가.

내친김에 또 다른 작가를 만났습니다. 서혜주 작가의 작업실을 들렀습니다. 작업실 이름이 '그랑 쇼미에르(프랑스에 있는 예술 공간)'입니다. 서 작가는 화폭에 그리는 그림 재료가 독특합니다. 재료를 모두 자연에서 얻었습니다. 화선지에 천연재료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더군요.

작은 집들을 빼곡히 그려 놓은 화폭을 보며 설명을 부탁했습니다. 서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집을 그려 놓았는데 모두 창문이 그려져 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진 서 작가의 말입니다. "작은 집들을 모아 그리면서 잃어버린 숲에 대한 기억과 아쉬움을 표현했다"고 설명합니다.

임수진 작가.

끝으로 옆 건물에 있는 임수진 작가를 찾았습니다. 임 작가는 굴곡진 선을 화폭에 그렸습니다. 다양한 선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얽힌 인연을 표현했답니다. 낙서처럼 마음대로 그려댄 것이 아니라 '리좀이론(Rhizome, 즉흥적이며 연관성 없이 확장하는 이론)'에 바탕을 둔 작품입니다. 설명을 들었습니다.

작가는 "선은 인연의 끈"이라며 "선을 통해 인연의 통로를 표현해 봤다"고 설명해줬습니다. 흘려보면 무질서하게 얽힌 선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거죠.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 눈이 새롭게 뜨입니다. 다시 본 작품, 선들이 모두 질서정연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밤이 되면 창동 예술촌은 어떻게 변할까요? 그야말로 깜짝 놀랄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헤집고 걷다 보니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 나옵니다. 배달래라는 아티스트가 서울에서 온 두 명의 무용가와 함께 보디페인팅 퍼포먼스를 펼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빼곡히 들어차 공연의 열기를 더하더군요.

그렇게 창동의 밤은 또 다른 변화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깊은 밤, 사람들은 색다른 문화를 연출합니다. 낮 동안 작품 활동에 열심이던 예술가들과 사람들이 삶을 위해 쉼 없이 움직였던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냅니다. 삼삼오오 모여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전국의 많은 도시가 원도심을 생기 넘치게 하려고 고민합니다. 창동 거리를 걷다 보니 이곳이 '원도심 활성화'라는 고민을 풀어줄 전국의 모범지역으로 우뚝 설 날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창동 예술촌 골목길 한번 걸어보세요. 그 길 걷다 보면 예술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 할 겁니다. 예술과 문화 결코 높은 곳이나 먼 곳에 있지 않더군요. 좁다란 골목길에 둔감한 제 피부가 느낄 만큼 가깝고 친근한 곳에 있었습니다. 창동 골목길의 화려한 변신 어디까지 이어질지 못내 궁금해집니다.

/황주찬(블로거·여수환경 blog.ohmynews.com/ysh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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