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과 떠난 '지리산 최고난도 코스'…선배 몫 '톡톡'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1년에 한 번씩 지리산으로 이동학습을 갑니다. 작년에는 1학년으로 2학년 선배들과 함께 지리산을 갔었지만 이번에는 제가 2학년이 되어 지리산에 갔습니다.

게다가 지리산 대피소의 자리가 부족해서 몇 명만 제외하고는 3학년들은 지리산 이동학습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 2학년과 1학년들만 지리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후배가 아니라 선배로서 후배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물론 지리산을 가는 조마다 담당 선생님이 동행하지만 선배의 역할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작년에 학교에서 지리산을 갈 때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서 지리산 능선을 쭉 돌아 천왕봉까지 갔다가 중산리로 내려오는 최상코스 종주를 했습니다.

노고운해 (老姑雲海)로 불리는 구름과 안개가 빚어낸 지리산 노고단 '구름바다'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뉴시스

역시나 최상코스로 지리산을 갔다 오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간단하게 지리산 경치도 구경하고 여유롭게 난이도 '중코스' 정도를 다녀올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 코스를 고민하던 중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1학년 후배들 몇 명이 함께 같은 조를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후배들의 요청을 수락하였고 그들과 같은 조가 되어 지리산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배들이 선택한 지리산 코스는 제가 작년에 가서 엄청나게 고생했던 최상 난도의 화엄사 코스였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지리산 최상코스를 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작년에 가 본 코스라 부담이 덜 하기는 했지만 이미 가 본 코스이기 때문에 더 걱정되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선배의 입장으로 후배들도 챙겨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여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이왕 최상코스를 가게 되었으니 보다 철저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무게를 줄이고자 짐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저희 조의 선생님까지 합쳐 총 7명에게 3만 원씩 거두어서 장을 보고 산에서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등산에 필요한 초콜릿과 사탕 등의 간식도 챙겼습니다.

확실히 작년에 이미 지리산을 가 본 경험이 있었기에 준비하기가 훨씬 수월했고 더 철저히 필요한 것을 잘 분배하여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전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름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드디어 지리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조는 첫날 점심밥을 등산하는 중간에 쉬면서 간단하게 김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직접 김밥을 한 손에 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산을 오르는데 한 손에 짐이 있으니까 무척 불편하기는 했지만 우리 조를 위해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꿋꿋하게 올라갔습니다.

한 절반쯤 올라가니 같은 조의 친구가 점심을 먹을 장소를 찾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앉아서 김밥을 미리 먹지 않고 뒤에 오는 같은 조의 멤버들을 기다렸습니다.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뒤에 오는 같은 조원들을 놔두고 먼저 김밥을 먹어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화엄사 코스의 첫날은 길이가 짧아서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에 조원들을 기다려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도 조원들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모습은 아쉽게도 둘째 날부터는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둘째 날부터는 정말 지리산 최상코스의 면모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엄청난 길이를 자랑합니다. 둘째 날은 노고단 대피소에서 출발하여 세석대피소까지 약 22㎞ 엄청난 산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날처럼 같은 조를 기다리다가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괜히 기다렸다가는 야간산행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조는 무엇보다도 안전과 함께 가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역시나 점심을 먹기로 한 연하천 대피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원이 오면 바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저와 친구는 미리 점심을 먹고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나머지 조원들이 도착했고 저는 점심으로 라면을 준비해 놓고 다시 세석대피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둘째 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세석대피소에 도착해서도 역시 점심때처럼 먼저 도착한 저와 친구가 먼저 저녁밥을 먹고 나머지 조원들이 먹을 밥을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다른 조들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나머지 조원들이 오면 함께 밥을 먹고자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지만 저희 조는 먼저 도착한 조원들이 나머지 조원들이 오자마자 편하게 밥을 먹게 하려고 미리 요리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행히 힘이 제일 많이 남아돌았던 제가 밥을 하고 스팸을 굽는 등 요리 대부분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리다 드디어 나머지 조원들이 도착을 하였고 제가 해준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

조원들은 무척이나 고마워했습니다. 딱히 고마워하기를 바라면서 저녁밥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에게 고맙다고 말해주는 조원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뿌듯했습니다.

작년에 지리산에서 저희를 챙겨주었던 선배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요? 선배의 역할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하면서 후배들을 챙겨주는 것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 준 따뜻한 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조원들을 보면서 제 마음도 따뜻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지리산을 다녀오면서 지리산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후배를 대하는 선배로서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서 조금 더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선배라는 존재는 후배가 힘들어 할 때 따끔하게 충고할 게 아니라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학교에서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고 제가 평소에 후배들을 대하는 모습에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배들은 선배들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편하고 자신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산 김태윤(대안고딩 김태윤의 놀이터·http://kimt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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