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태 뽐내는 ‘수려한 유혹’ 계곡물에 속세먼지 씻어내고…

과연 산이 우람하다. 천년고찰을 자처하는 천태사를 한 손으로 달랑 안고 가슴팍을 활짝 열어젖힌 사나이와 같은 모양이다. 절집은 아래쪽에 소담스레 앉아 있는데 위쪽 골짜기에는 집채만한 바위들이 양쪽으로 삐죽삐죽 솟아 있는 것이다.
천태산(631m)은 잘 생긴 남자 같은 느낌을 준다. 높지는 않지만 기세가 당당할 뿐 아니라 흐름 또한 힘차고 가파르고 험하다. 골짜기에 돌들도 하나같이 크고 시커멓다. 아기자기하다기보다는 굵직굵직하고 씩씩하다.
천태사 질러서 왼편으로 빠져나가 바위로 이뤄진 계곡을 훑어서 20분 가량 오르면 폭포가 나타난다. 용연폭포다. 높이는 20m를 훨씬 넘어보이고 아래에는 웅덩이가 패어 있다.
용연폭포를 마주보면서 오르는 길은 잘못 내디디면 바로 떨어질 만큼 좁고 가파르다. 하지만 폭포는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느낌이 다르고, 아래에서 볼 때와 같은 높이에서 볼 때, 그리고 위에서 볼 때 제각각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오르면서 보면 정수리에다 물을 들이붓는 것 같고 가까이서 마주보면 가슴팍으로 시원함이 건너오며 위에서 보면 어딘가 모르게 한 쪽이 짜릿짜릿해 온다.
천태산은 이래서 기운이 왕성하게 솟는 여름과 어울리는 산이겠다 싶다. 골짜기 물도 풍성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들끓겠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지금 둘러보는 겨울 산도 좋은 것이, 무성한 것들은 다 지고 원래 있는 것들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은 잎진 나무와 늘푸른 소나무, 그리고 바위로 된 겨울산을 수묵으로 많이 그렸다. 겨울 천태산이 꼭 그 모양이다. 산꼭대기나 능선에는 소나무가 줄지어 있고 산 아래쪽이나 골짜기에는 크고 작은 활엽수들이 잎을 다 떨어뜨린 채 꼿꼿이 서 있는 것이다.
바닥은 떨어진 이파리들로 오히려 화사한데 나무들은 담갈색 줄기만 드러내거나 채 물들기도 전에 바짝 말라버린 잎들을 매달고 메마르게 서 있다. 그리고 군데군데 커다란 바위가 삐져나와 단조로움을 없애주는 것이다.
천태산 오르는 길은 한 번 가팔랐다가 한 번 평평해진다. 그래서 한 번 위험해졌다가 다시 편안해지는 길이다. 사람살이처럼 이런저런 굴곡이 훤히 드러나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산을 찾은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부부로 보였다. 산에서 즐거움만 누리려는 연인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깎아지른 산을 즐기는 이들도 아닌 것이다. 가파른 길이 나오면 서로 끌어주고 험한 길에서는 서로 의지가지가 돼 줄 것이다. 그러다가 모든 걸 떨궈버린 잡목들 사이로 평탄한 길이 나오면 이런저런 세상사를 주고받으며 정분을 쌓는 것이다.
천태산은 이른바 양산팔경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천태산이 아니라 산마루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맞는 ‘천태낙조’가 그것인가 보다. 옛사람들은 “소라계곡 햇빛 머금어 애써 반만 벌었는데 마고선녀 머리 감으러 구름 타고 내려오네” 노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지 못했다. 꼭대기에서 해지는 것을 보려면 적어도 5시는 넘겨야 하겠고, 산길이 보통 아니게 험해서 어두워지면 무슨 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올 때는 등불을 미리 챙겼다가 꼭 보고 와야지.
또 기록에 따르면 천태산 꼭대기 어느 곳에는 “아무리 가뭄이 닥쳐도 마르지 않는 신비스러운 연지”가 여섯 평 정도 크기로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확인하지는 못했다.

▶가볼만한 곳 -하늘아래엔 잔잔한 천태호 물결

밀양 삼랑진에는 양수발전소가 있다. 저수지를 2개 만든 다음 남는 전력을 이용해 높은 저수지로 물을 끌어올려 다시 발전을 한다는 곳이다.
그 가운데 하나인 상부(上部) 저수지가 천태산 꼭대기 근처에 있으니 이름이 천태호다.
보통 산자락에 걸쳐 있는 저수지와 달리 정상에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산에 올라보면 드넓은 호수가 펼쳐지는데 물결도 잔잔하다. 가만 들여다보면 물아래 깔려 있는 돌들이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보인다. 그 위로는 낙엽들이 가라앉아 있는데 물에 젖어서인지 산 속에 뒹구는 것들보다 색감이 훨씬 뛰어나다. 천태호를 받치고 있는 돌축대도 볼만하다. 적어도 100m는 넘어보이는데 아래에서부터 위로 40도쯤 되는 각도로 돌들을 가지런하게 쌓아올려 저수지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천태산 오르는 길에 이렇게 천태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으면 오는 길에 밀양 안태마을에서 표지판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올라 양수발전소를 찾아도 되겠다.
새해와 설날.추석 연휴를 빼고 연중 무휴로 관람객을 받고 있는데 요즘 같은 겨울은 오후 4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3시까지 받아들인다. 기록영화와 전시관도 둘러볼 수 있고 위 아래의 저수지도 다 볼 수 있다. 또 봄철에는 안태마을에서 발전소로 들어가는 찻길 양쪽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하니 그 또한 만만찮은 볼거리겠다 싶다.


▶찾아가는 길

천태산에 가려면 진주역이나 마산.창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삼랑진역이나 원동역에서 내리면 된다.
삼랑진역과 원동역 모두에 가는 차편은 마산역에서 오전 4시 51분과 7시 44분, 이어서 낮 12시 32분.오후 4시 3분.6시 20분.8시 3분에 있다. 삼랑진역에만 가는 것으로는 오전 6시 55분.11시 35분과 오후 3시 20분과 9시 15분에 있다. 원동에서는 4km쯤 떨어져 있는데 걸으면 1시간 가량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대중버스나 택시를 탄다.
삼랑진에서는 차편으로 20분 가량 걸린다. 그러니 아예 걸을 생각은 하지 말고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는 수밖에 없다. 창원.마산.진주로 돌아오는 기차편은 원동에서 오후 1시 2분.4시 16분.7시 4분에 있으며 삼랑진에서는 오전 6시 6분 첫차를 비롯해 7시 28분부터 오후 10시 16분까지 10차례 마련돼 있다.
자가용 차로 가면 좀더 쉽다. 마산.창원에서 39사단과 동읍을 지나는 국도 14호선을 타고 가다 국도 25호선으로 옮겨탄다. 수산대교를 지나 낙동강을 건넌 다음 새로 넓힌 길을 따라 달리다 밀양 평촌 마을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된다.
삼랑진 가는 길이다. 외길이나 다름없는 이 길을 따라 밀양강을 건너면 곧바로 삼랑진읍이 나오고 읍내로 들어가 왼편 삼랑진역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다 역 바로 앞에서 다시 왼쪽으로 틀면 양산으로 이어진다.
삼랑진역에서 천태산까지는 10km 남짓 된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달리다 밀양 안태마을 양수발전소를 지나 고개를 하나 넘으면 골짜기에 천태사가 자리잡고 있다. 천태산 등산은 여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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