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 권 빽빽이 꽂힌 책장…책주인 낙서 등 흔적 곳곳에

고등학교 3학년 때, 토요일에는 오후 1시까지 정상수업을 하고 오후 6시까지 자율학습을 했습니다(공부하기 싫을 때는 미칩니다 ㅠㅜ).

아주 가끔 1시에 학교를 파하고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끔 놀러 가던 중고서점이 있었습니다. 마산 수출 후문 앞, 흔히들 이야기하는 마산자유무역지역 후문 건너편에 시골학교 체육관 모양의 중고 서점, 이름하야 '영록서점'.

지금은 근처 하천이 복개되어 도로가 놓이고 개발이 되어 그곳에는 서점이 없습니다. 4~5년 전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영록서점'이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시장으로 옮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며칠 전에 블로그 댓글을 확인하다가 노충현 화백의 댓글을 봤는데, '영록서점'의 존재를 물었습니다.

아는 내용이라 간략하게 답을 해드리고, 저도 생각난 김에 '영록서점'의 홈페이지를 찾았습니다.

책장에 빽빽이 꽂혀 있는 책들.

아~ 이게 웬 횡재입니까? 그토록 찾던 마로니에북스의 명작 400선 중 〈VAN GOGH〉가 메인에 있는 겁니다. 명작 400선 시리즈가 5권이 출간되었는데 유독 반 고흐만 품절이더군요.

인기를 반영하는 거겠지요. 미술책이니 출판사도 더 찍어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테고.

가격도 착합니다. 정가가 2만 3000원인데, 9800원에 올라와 있네요. 밤늦은 시간이지만 냉큼 주문을 했지요.

얼마 전, 영록서점 다녀왔습니다. 석전시장 상가아파트 건물입니다. 지하와 1층, 2층은 상업 건물로 사용하고 3층부터는 주거용이라네요. 1층에는 빈 가게가 많더군요. 영록서점은 2층 전부를 임차해서 사용합니다.

헌책방은 다 비슷합니다. '쾨쾨한' 책 냄새가 나고요, 두 사람이 지나다니기 힘들만큼 책장이 빽빽하고요, 그것도 부족해 발 디딜 틈 없이 책이 쌓여 있습니다.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책 창고가 하나 더 있다고 하는데 총 120만 권 정도 된다고 합니다.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해서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는 책이 20만 권 정도랍니다. 여직원 한 분과 사장님이 영록식구 전부인데요. 참 지난한 작업이지요.

책도장과 이름·전화번호 등 세월을 담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날 득템한 책입니다. 새책 수준입니다. 반 고흐의 다른 책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시리즈에서 한 권 비면 그 허전함이….

구천구백 석의 쌀을 수확하는 부자는 만석꾼이 되지 못함을 아쉬워하지요.

중고 책의 묘미라고 할까요? 책도장이 찍혀 있네요. 이름도 있고 전화번호도 010 휴대전화기 번호도 있습니다.

영록서점에서는 매주 토요일, 일요일에 마산역 앞 광장 주차장 한쪽에서 권당 1000원에 책을 판매하는 행사를 한답니다.

지역주민들께서는 큰 기대 없이 가셨다가 '득템'하시기를….

/흙장난(흙장난의 책이야기·http://bloodlee.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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