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m 꽃 피우는 키 작은 탐라풀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WCC)는 제주에서 9월 6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되었다. 이에 생태환경교육활동가 네트워크에서는 경상남도 람사르환경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주의 생물다양성을 보고 익히며 더불어 WCC총회도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나는 그동안 제주를 온 적이 있긴 하지만 오로지 생태탐방을 목적으로 온 것은 3년 전에 생태강사 선생님들과 온 뒤로 처음이라 김해공항에서부터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들떠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1100m고지. 제주의 도로 중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곳이 1100m인데서 붙은 명칭으로 한라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한라산의 남쪽과 북쪽을 가르는 경계역할을 하는 곳이다. 안에는 훼손을 염려하여 산책로를 모두 데크로 연결시켜 놓았는데 보고 싶은 식물이 있어도 데크를 벗어날 수 없어 사진찍기는 매우 어려웠다. 제주에 있는 식물들은 섬이라는 특이지형도 있고 바람이 많이 불어 같은 식물이라도 육지의 식물과 잎의 크기나 식물체의 크기가 현저히 작아 다른 식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육지에 있는 식물과 전혀 다르게 생긴 식물들도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보통 앞에 ‘한라-’가 붙거나 ‘탐라-’가 붙거나 ‘제주-’라는 접두어가 붙곤 한다. 한편 울릉도의 경우에는 ‘섬-’이라는 접두어가 붙기도 한다.

탐라풀

1100m고지에서 가장 미모를 뽐내는 식물은 단연 한라부추(Allium taquetii H.Lev. & Vaniot var. taquetii)로서 군락으로 여기저기 자라고 있어 만개하면 정말 장관일듯 싶었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모두 봉오리상태였고 이번에는 몇 송이 피고 있는 개체가 있긴 했지만 아직 절정은 아니었다. 보통 부추 꽃은 흰색인데 이 한라부추 꽃은 보라색인 게 다르고, 조금이라도 피어있는 녀석은 카메라 사정거리에 있지 않아 데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며 팔을 앞으로 쭉 빼고서야 겨우 찍을 수 있었다. 이 한라부추는 해발이 높은 곳에만 자라기 때문에 제주의 1100m고지가 아니면 등산을 아주 열심히 해야 볼 수 있는 한국 특산식물이다(지리산, 백운산, 가야산 정상 부근에 있음).

보라색 방울꽃은 어디서 소리날까?

한라부추

두 번째 목적지는 한라생태숲. 3년 전에 왔을 때는 없었는데 하며 개원년도를 찾아보니 2009년 9월 15일이다. 우리는 2009년 8월에 다녀갔으니 당연히 못본 거고 9년이란 긴 세월동안 조성사업을 했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도 계속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어쨌든 수목원과 비슷한 형태로 조성이 되어있어 몇 년 뒤에는 훌륭한 생태숲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육지에서 잘 볼 수 없었던 보라색 꽃을 피고 있는 녀석이 있어 이름을 물어보니 제주도에서만 서식하는 방울꽃(Strobilanthes oliganthus Miq.) 이란다. 동요에 나오는 방울새도 아니고 방울꽃? 어디서 소리가 나나? 하고 아무리 귀 기울여 봐도 소리는 나지 않았는데 혹시나 열매가 터지면서 소리가 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려면 10월이나 11월에 또 와야 하는데…. 어쨌거나 육지에서는 볼 수 없지만 제주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었다.

앞서가던 기숙이가 카메라 렌즈를 땅바닥에 처박고 뭘 열심히 찍고 있길래 “기숙아 뭐 찍어?”하고 큰소리로 물었더니 “몰러, 조용히 좀 해”하고 핀잔을 준다. 아주 조그마한 꽃을 찍고 있어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모양인데 나는 잘 찍을 수 있다며 덩달아 한 컷 찍었다. 마침 꽃 가이드와 만나 꽃 이름을 물어보니 탐라풀(Hedyotis lindieyana var. hirsuta (L.f.) Hara)이란다. 기숙이는 옆에서 “아! 맞다 탐라풀. 이게 이름이 왜 이렇게 안외어지누~” 했지만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녀석이다. 3년 전에 알려줬대나 뭐래나. 아무튼 이름에 탐라가 들어가니 역시 제주에서만 자라는 녀석이다. 꽃은 어찌나 작은지(2mm 정도) 숨도 참고 팔도 떨지 말고 찍어야 겨우 나온다.

왼쪽부터 방울꽃,양하,-전주물꼬리풀

한라생태숲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누가 옆에서 “여기에 생강은 뭐하러 심어놨을꼬”하고 묻는다. 쳐다보니 나도 3년 전에 왔을 때 생강과 비슷해서 물어봤던 식물인 양하(Zingiber mioga (Thunb.) Roscoe)였다. 아시아 열대 지방이 원산지라는데 제주에서는 많이 자생하기도 하고 재배도 많이 하고 있어 제철에 마트에 가면 양하가 채소 진열대에 있는 걸 볼 수 있다. 잎이 피기 전 줄기는 봄양하라고 해서 된장에 무쳐 먹고, 꽃이 피기전의 꽃줄기는 가을양하라고 해서 짱아찌 등으로 해먹는다고 한다. 옆에서 아는 언니는 시어머니가 해마다 양하 짱아찌를 해주시는데 그게 이거 였나며 놀라워하기도 한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꽃을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엔 꽃을 보는 행운을 얻었다. 그런데 꽃의 모양이 참으로 신기하게 생겼다.

제주에는 제주에서만 자라는데 이름에 ‘제주’가 붙지 않고 ‘전주’가 붙은 식물이 있다. 원래는 전주에서 발견돼 이름에 전주가 붙었지만 그 동안 습지의 개발과 훼손으로 습지지역이 감소하면서 전주에서는 자생지를 확인할 수 없고 현재 제주도의 일부에서만 자라고 있는 실정이다. 이름하여 전주물꼬리풀(Dysophylla yatabeana Makino). 3년 전에 왔을 때는 군락에서 찍었는데 현재는 그곳도 일부 개발이 되어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를 가이드로부터 들었다. 이젠 제주밖에 서식처가 남지 않았는데 관광붐을 타고 개발이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특히나 전주물꼬리풀은 멸종위기야생 동식물 Ⅱ급, 국외반출 승인대상 생물자원으로 등록되어 있어 관리가 필요한 식물자원이다.

제주를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올 때마다 참 특이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식물과 곤충들을 보면 그 생각이 훨씬 더 강하게 든다. 처음엔 육지에 붙어있었을 텐데 육지와 떨어지면서 새로운 식생과 곤충상을 만들어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있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제주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