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2007년 선거공약 등 우리 모습 되짚어

"우리가 강제한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거야." 나치 정권을 독일 국민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 선전·선동의 대가 폴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가 한 말이다. 1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MB의 추억>이 적은 개봉관에도 사람들 입 소문으로 타고 있다. 경남에서도 지난 19일 오후 7시 30분 경남시청자영상제작단 주최로 마산 창동예술소극장에서 첫 상영됐다.

영화 <MB의 추억>은 지난해 국내 방송사 맛집 프로그램 제작 과정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커넥션을 밝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영화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의 신작. 연말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 관점에서 5년 전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대선 활동을 되돌아보는 '정산코미디'를 표방했다. <MB의 추억>은 앞서 괴벨스가 한 말을 크레디트 전면에 내세우며 시작한다.

이내 시장 한복판, 길거리, 상가 등을 다니며 민심을 얻고자 '경제를 살리겠다'고 연설하는 이명박 후보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다.

"시민을 위한다고 했던 정부가 과연 무엇을 했는가", "왜 서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는가", "지난 5년간 잘 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됐겠습니까" 등의 말로 참여정부를 깎아내리는 유세 장면은 정치공학상으로 보면 애교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유세를 펼치는 모습.

당시 이 후보가 군부대를 방문해 장병들과 함께 밥을 먹는 모습, 시장 한편에서 국화빵을 직접 만들어 파는 모습,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일을 하는 모습 등 '서민적으로 보이려고 하는 노력'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내가 노동자여봐서 잘 아는데", "내가 장사를 좀 해봐서 아는데" 등 임기 내내 조롱거리가 됐던 "~ 해봐서 잘 아는데" 퍼레이드도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당시 이 후보를 '경제 살릴 서민대통령' 이미지로 각인시킨 국밥집 CF 속 할머니가 실은 연기자였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시민들도 등장한다. "우리 경제를 살릴 분은 이명박이다. 저런 분과 함께해 너무 행복하다", "우리나라 경제를 살릴 경제대통령이 되지 않겠는가." 격앙된 얼굴로 두 팔을 높이 든 채 브이(V)자를 흔들며 MB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야기는 이명박 후보가 당시 내뱉은 말과는 전혀 다른 지금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게 전부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는 '이미지 정치와 미디어'라는 보다 넓은 관점으로 봐야 이해가 더 빠르다.

김재환 감독은 전작 <트루맛쇼>가 그랬듯, 현상을 왜곡하는 미디어의 속성에도 '딴죽'을 건다.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 때 제대로 된 봉사보다는 사진 촬영에 바쁜 모습,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장병들의 군가를 마지못해 들으면서도 입안의 음식물을 쉬지 않고 오물거리는 장면, 재래시장 출신이라며 시장에서 국화빵을 직접 만들어 팔고, 노동자 출신이라며 달동네에서 연탄을 배달하고, 국밥집 CF에서 친서민 이미지 연출을 위해 연기자 동선까지 체크하는 모습….

이들 연출된 이미지 속에 본질을 숨겨 국민을 기만하려는 실상이 비춰질 때면 어김없이 분노의 탄식이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김재환 감독은 기존 미디어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이면을 담담하게 전한다. 서민들 목소리까지 담아내기에는 끈기가 부족한 게으른 미디어의 시선 앞에 국민들 판단력은 흐려지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괴벨스의 말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강제한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거야."

   

마산 사람들도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영화는 '지역감정의 힘'이라고 표현하며, 부림시장과 오동동 지역 상인들 인터뷰를 전했다.

부림시장 내 한 분식집 사장은 "언제 한 번 그렇게 높으신 분에게 국수를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추억했고, 어물전 상인은 "안좋은 시기를 타서 그렇지 (이)명박이가 잘못한 건 아니다"라며 대통령을 두둔했다.

당시 오동동상인연합회 부회장이자 이명박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한 여성은 "당시 정말 열렬히 지원했는데 후회는 없습니다. 이제 박근혜를 지지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좀 다르지 않겠어요"라며 웃음지었다.

영화는 이렇게 시종일관 MB에 비판적이지만 이 대통령 한 사람의 모순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대선 과정에서 '이미지 정치'를 가장 잘 활용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지난 2002년 선거운동에서 서민 존중, 재벌 개혁, 상식이 통하고 특권없는 사회 건설을 외쳤다. 하지만 5년 만에 국민들에게 돌아온 건 '극심한 양극화'와 '삼성공화국', '친인척 비리'였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으면 <DY(정동영)의 추억>이나 <창(이회창)의 추억>이 됐을 것"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단지 대상이 '이명박'이라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앞으로 5년 후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추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추억이 어떻게 그려질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국민들이 얼마나 미디어에 속지 않고 현재 후보들을 감시·감독하느냐에 따라 추억거리가 바뀐다는 점이다. 영화 막바지, 이명박을 열렬히 지지하는 상인들 사이로 선명하게 아로새겨지는 '기표 마크'가 주는 메시지를 잘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대구 동성아트홀, 부산 국도예술관에서 상영 중. 문의 010-9977-1485(경남시청자영상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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