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이런동호회] 빈대떡 냄새 퇴로마을에 번지던 날

‘동아리’라는 단어에는 생명력이 물씬하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마침내 장성하는 말의 생로병사가 담겼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동아리는 거의 쓰이지 않는 고유어였다. 그런데 외래어인 ‘써클’이라는 말을 제치고 쓰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회 전반에 걸쳐 동호회라는 의미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대학과 중·고교는 물론, 기업·기관·단체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한국 사회에는 비슷한 성격의 단어가 참 많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동호회나 ‘00모임’ 같은 취미 유형부터 동창회나 향우회, ‘00계모임’까지 공통의 매개를 가진 소집단을 이르는 말이 많다. 그만큼 이 사회가 개인을 기초로 하기보다는, 집단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폐해가 큰 것도 사실이다. 집단 그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집단을 개인의 이익에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연, 지연, 혈연사회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조리사 동호회 '요리조리 웰빙'./이일균 기자

그런 점에서 같은 취미를 즐기는 동호회 성격을 띤 동아리의 역할은 남다르다. 소집단의 순기능을 대변하고 극대화할 수 있는 위치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처럼 기업이나 기관에서도 동아리를 지원한다. 경남교육청이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연구동아리를 선정하고 지원하는 이유도 같은데, ‘요리조리웰빙’(이하 요리조리)도 그중 하나다.

12명의 학교조리사 모임

요리조리는 경남교육청 내 12명의 학교조리사가 회원이다. 2008년 결성됐을 때는 김해지역 안에서 활동했지만, 올해부터 경남으로 폭을 넓혔다. 도교육청 내에는 이런 식으로 직무영역별로 구성된 동아리와 컴퓨터, 언어 영역 등에 32개의 등록 동아리가 있다. 요리조리가 2008년에 결성됐으니 그중 맏형 격이다.

이들의 주된 활동은 한국의 전통요리 연구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하자는 뜻이 담겼다. 한식 잔치요리 연구를 위주로 한다. 그래서 한식요리 전공의 영산대 김정숙 교수와 부산대 앞 떡집 ‘꽃메떡메’의 손영재 대표가 명예회원이 됐다.

전통 한식 중에서도 지난해까진 ‘혼례음식’에 초점을 두었고, 올해부터는 잔치음식으로 폭을 넓혔다. 그 이유로 김수연(53·김해 경남은혜학교 조리사) 회장은 “전통적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현대인들도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혼례와 잔치음식 요리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요리법을 터득해 학교에 돌아가 음식으로 만들면 아이들도 맛있고 재밌어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조리사 동호회 '요리조리 웰빙'./이일균 기자

방법도 흥미롭다. 회원들 한명 한명이 돌아가면서 자신이 강점을 가진 요리를 소개한다. 지난해까지는 회원들의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실습을 했고, 올해부터는 밀양시 부북면 퇴로마을의 전통음식체험관으로 아예 장소를 고정했다.

지난해에는 ‘3월, 도토리묵과 메밀묵 만들기’, ‘4월, 오븐을 이용해 식혜 약밥 만들기’, ‘5월, 너비아니 갈비구이’ 등이 이어졌고, 하반기에는 북어·장어구이, 사태편육냉채, 대하·백합구이, 더덕·통도라지구이 요리를 했다. 올해 들어서는 술이나 메주로 장을 담그고, 기자가 동행취재를 했던 9월에는 녹두빈대떡을 만들었다.

전통음식 소중함을 아이들도 알아야

매월 첫째 주 토요일로 잡힌 규칙대로 9월 1일 오전 10시에 밀양시 부북면 퇴로마을 전통음식체험관에 회원들이 다 모였다. 퇴로마을 부녀회 회원 5~6명이 함께 요리 채비를 마치자 오늘의 강사인 이옥숙(56·창원 안청초교 조리사) 회원이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전문가인 터라 설명시간은 길지 않았고, 곧바로 실습에 들어갔다. 각각의 요리대마다 서너 명 씩 팀을 만들었고, ‘토닥토닥’ ‘쓱쓱쓱’ 칼질 소리가 시작됐다. 고기를 다지고 파를 써는 소리가 비가 내리듯 규칙적이었다.

그렇게 30분, 이옥숙 회원이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본격적으로 빈대떡을 부치기 전에 뭔가 당부를 하기 위해서다. “옅은 불에 서서히 굽고, 태우지 마세요.” “고추로 만든 무늬는 모양 좋게 붙여 주시고.” 역시 길지 않았고, 요리대마다 가스불 켜는 소리가 ‘톡톡톡’ 나더니 곧바로 자글거리기 시작했다. 노릇한 고기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 것도 동시였다. 직접 요리에 참여하지 않았던 취재 기자는 금세 침을 흘렸지만, 요리조리 회원이나 마을 부녀회원들은 그런 일이 없었다. 무덤덤하게 빈대떡을 구웠다.

김수연(왼쪽) 회장과 명예회원인 김정숙 교수./이일균 기자

명예회원인 김정숙 교수는 기자와 동행했던 이호정(11) 군에게 아예 요리를 시켰다. 직접 굽게 하고 뒤집게 하고, 다 굽힌 빈대떡을 보기 좋게 접시에 옮기게 했다.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키면서 기자에게 이런 설명까지 했다. “아이들이 요리를 직접 하는 것도 좋지요. 먹거리의 소중함을 체험하는 기회니까요. 이 모임이 훌륭한 것은 회원들이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전통음식의 소중함을 알게 한다는 점이라고 봐요.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져 가는 아이들에게 전통음식을 먹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죠.”

하나씩 둘씩 완성된 빈대떡이 접시에 쌓이고, 고소한 빈대떡 냄새가 진동을 했다. 냄새가 전통음식체험관 주방을 벗어나 온 마을에 퍼졌던 모양이다. 여주이씨 고가와 함께 퇴로못(위양못) 구경을 왔거나, 전통음식체험관과 붙어있는 치즈요리체험관에 온 관광객들이 기웃기웃했다. 마을 경로당에서도 무슨 소식이 있었던지 김수연 회장이 “다 된 빈대떡을 싸서 경로당에 갔다드립시다”하고 제안했다. 냄새가 마을 밖을 벗어났을까. 인근 부북면사무소에서 면장과 직원 몇 분이 주방을 찾았다.

밀양 부북면 퇴로마을과의 인연

12시 30분 경 모든 요리과정이 끝났다. 한쪽에는 간단한 점심 상에서 박인강 이장이 부북면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있고, 마을 경로당에는 이미 수북하게 빈대떡 접시가 배달됐다. 남은 건 요리조리 회원들과 마을 부녀회원들의 점심 식사다. 회원들 간에 밀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 시각이다. 대화가 만발하고 웃음소리가 끝이 없다.

이들이 밀양 퇴로마을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뭘까.

김수연 회장과 퇴로마을 부녀회원./이일균 기자

전통요리 연구를 주로 하던 이들 활동에 전기가 됐던 게 지난해 10월 밀양시 부북면 퇴로마을과 맺었던 자매결연이다. 매개가 된 이 마을 ‘전통음식체험관’은 농림수산부로부터 국가보조비 지원을 받을 정도로 외형을 갖췄다. 전통요리에 대한 요리조리의 소프트웨어와 퇴로마을이 ‘윈윈’한 셈이다.

자매결연을 맺었던 10월 12일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이곳에서 열린 분재전시회에 때맞춰 방문객 350명의 점심식사를 준비하면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식단을 짜고, 재료를 구하고, 단체음식을 만들었다. 이 경험은 마을 수익사업 계획에 충분히 힌트가 됐다. 동아리 회원들의 재능기부가 또 하나의 활동으로 자리를 잡았다. 퇴로마을 박인강(57) 회장이 마을 소개를 겸해 요리조리와의 자매결연 평가를 했다.

“주말에는 민박도 받는데 요즘은 꽉 차요. 마을에서 여주이씨 고가도 구경하고, 마을 앞 퇴로못 구경도 하지요. 인근에 밀양연극촌도 있고. 게다가 음식체험관에서는 전통음식에다 치즈요리 체험까지 하니까 인기가 많아요. 밀양의 명물이 된 거죠.”

“아이구 고맙죠. 특히 분재전시회 때 요리조리 회원들이 직접 와서 마을부녀회와 단체요리를 만들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자주 있을 건데, 서로 서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특정한 마을과 자매결연을 하는 동호회가 경남에 그리 많지 않을 걸요!”

회원들의 동아리 예찬

회원들의 점심시간에는 동아리 예찬도 쏟아졌다.

김수연 회장은 “2008년 결성 초기에는 회원들의 활동 자신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조리사 일 자체가 육체적으로 힘들고, 매주 학원에서 4~5시간 씩 수업을 병행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다고 했다. 게다가 요리연구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동아리를 6살까지 나이를 먹게 하고, 지금은 회원 폭을 경남 차원으로 넓혔다. 모임 총무인 홍복자(49·하동 악양초교 조리사) 회원은 매달 하동에서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배우려고 하는 욕구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매일 하던 요린데도 몰랐던 음식을 연구하고, 이를 학교에서 활용해 좋은 평가를 얻으니까 힘이 나더라구요.”

김광선(48·진해 동부초교 조리사) 회원은 “그냥 즐거워요. 한 달에 한 번 씩 이렇게 만나면. 일상 생활하는데 활력소가 되죠” 하면서 활짝 웃었다.

한참 자라는 청소년들이 질 높은 한식 요리기술로 만든 음식을 먹게 되면서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고 자부하는 경남의 학교조리사 동호회 ‘요리조리웰빙’ 회원들.

어릴 때 식습관이 한 사람의 건강을 80% 이상 좌우한다는 사명감으로 다음 달도, 또 그 다음 달도 뭔가 전통음식 요리 실험을 할 것이다. 김수연 회장에게 그때메뉴가 뭔지 살짝 물었다.

“다음 달엔 장아치 할 거고, 그 다음엔 한과와 엿을 만들 거예요. 또 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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