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빠지고 감정에 초점…'현대사회의 사랑' 돌아보게 해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X의 헌신〉은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받은 작품이다. 누군가가 저지른 살인을 감추고자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낸다는 설정은 지금봐도 흥미로운 콘셉트다. 과연 원작과 같은 노선을 걸었을까? 우선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은 물리학자라는 캐릭터가 없어져 버렸다. 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은 남아있지만 여성과 형사 캐릭터가 상당부분 두드러졌다.

일본 영화는 원작과 너무 충실했던 탓일까, 한국관객의 입맛에는 맞지 않은 탓일까,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이 소설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제대로 살리고 원작과는 거리를 두고 만들었다는 용의자X는 추리보다 감정에 비중을 두다 보니 추리물로서는 그 흥미도가 다소 떨어지게 된다.

◇순수함은 수학과 닮아 있다 = 한국에서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대부분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이다. 수학은 풀 수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명확함이 있는 학문이며 어떻게든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수학의 매력이다. 영화에서 김석고는 30대 중반 정도로 설정이 되어 있는데, 야윈 모습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은 외톨이가 무엇인지 잘 나타내고 있다. 외로움과 고독한 류승범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수학에 헌신했던 자신이 여성에게 헌신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용의자 X〉 한 장면.

◇사람 죽이는 죄책감은 사랑보다 크다 = 영화에서 화선은 석고가 짜맞추어진 계획에 따라 잘 진행되고 있음에도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그녀는 벗어나지 못한다. 심리적 불안감이 그녀를 지배함에 따라 스스로 무너짐을 보여주고 있다. 천재 물리학자의 설정이 빠졌지만 용의자X가 그녀를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은 제대로 포커스 되고 있다. 특히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마지막 장면에서의 헌신은 눈물샘을 제대로 자극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연기력으로 살린 영화 = 이 영화에서 세 명의 배우들이 표현하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살아있는 대신에 천재들의 팽팽한 두뇌 싸움은 없어졌다. 탄탄한 짜임새로 만들어진 유승범의 연기나 천재성은 빠졌지만 따뜻한 민완 형사와 가련한 여주인공의 등장은 영화를 감성적으로 포장했다.

모든 삶을 포기한 듯한 남자에게 삶이라는 희망의 빛을 보여준 여인은 자신의 능력을 100% 이상 발휘하게 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조합과 배치가 있음에도 밋밋한 것은 영화에서 정서적인 것을 더 보강하기는 했지만 탄탄한 짜임새는 떨어지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자신의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 = 영화에서 화선은 과거에 호스티스로 일을 했던 것과 복잡한 남자관계와 함께 남편까지 있는 여자로 출연하다. 복잡한 사생활의 여자이니만큼 남편 또한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다. 그 남편 덕에 결국은 살인이라는 굴레에 묶이게 된 화선은 석고 덕분에 우선은 함정에서 빠져나온다.

추리라는 것이 빠지게 되면서 용의자X에서 기대했던 고도의 머리싸움은 기대해볼 수는 없지만 얼마나 헌신할 수 있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집착과 사이코의 경계선상에서 석고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점점 일본과 닮아가는 한국사회에서 석고같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사랑은 헌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용의자X의 사랑은 공허한 느낌의 사랑이다. 친밀감도 없는 데다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사랑이다 보니 마치 스타를 향한 팬들의 사랑과 비슷하게 닮았다. 요즘 세태가 계산적인 사랑이라는 것의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석고의 사랑도 정상적이지 않다. 모든 사람이 열정도 있고 냉정함도 가지고 있지만 열정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우리 현대인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비극적인 느낌까지 든다.

사랑을 말하지만 우리 세태의 우울한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듯한 느낌이다. 가족을 형성하기에는 너무나 각박한 현실에 개인화되면서 혼자 하는 것이 사회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생각만큼 잘 만든 작품도 아니고 짜임새 있는 추리물도 아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호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기를 권하지만 공감을 할지는 의문이다.

/식객(지민이의 식객·http://blog.daum.net/h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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