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엄청난 캐릭터를 창조했다. '하이브리드 샘이 솟아 리오레이비'(이하 하이브리드)라는 황당무계한 이름을 가진 친구다.

멤버인 하하는 전매특허인 '꼬마' 캐릭터의 약간 성장한 버전을 선보인다. 이름만큼이나 단순·무식·과격하지만 왠지 밉지 않고, 예측을 불허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폭소를 자아낸다.

하이브리드는 '성장이 지체된' 34살 어른이다. 회사 면접장을 '위대한 탄생' 오디션 무대로 착각하는가 하면 신이 되어 '두발자유화'를 실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치렁치렁 얼굴을 다 덮은 머리로 사소한 것에 괴성을 지르고, 애니팡 끝판 깨기에 흥분해 밤잠을 못 이루는 모습은 사회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괴짜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지난 6일 〈무한도전〉에서 '하이브리드'(하하)가 정형돈 딸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

그렇다. 하이브리드는 확실히 우리 젊은 세대를 닮았다. 입시와 취업에 온 청춘을 다 바쳐야 하는 그들에게 세상과 제대로 소통할 기회가 있었던가? 하이브리드의 혀 꼬부라진 말투도 상징적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영어 학원, 해외 유학에 내몰린 그들은 '한국사람'인지 '미국사람'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도무지 정체성이 모호한 '갸루상'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무니다."

사회현안에 대한 하이브리드의 해법은 예의 기가 막히다. 학원폭력 대책으로 '마니또'(비밀친구)를 이야기하고 경제위기 대안을 묻자 태연히 '저금'을 제시한다.

대체 뭐하는 놈이냐고? 하지만 비웃지 말라. 세상 물정을 알 턱이 없지만 정형돈 첫째 딸 이름을 '정신차려이각박한세상속에서'로 지어줄 정도의 눈치는 있다.

하이브리드의 순수한 눈에는 이해되지 않는 게 너무나 많을 수밖에 없다. 학원폭력을 뿌리 뽑겠다며 가해자 색출과 처벌 강화에만 매달리는 어른들, 경제를 살린다면서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고 온 나라를 공사판으로 만드는 윗분들. 우리는 하이브리드를 꾸짖을 자격이 없다.

오히려 "친구들이 서로 뒤에서 도와주자"는 하이브리드의 학원폭력 해법이 이상적이지만 더 성숙해 보이지 않는가? 그걸 경제민주화라 하든 사회복지라 부르든, 서민들이 최소한의 '저금'은 가능한 경제·사회 구조가 된다면 그깟 경제위기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눈치 챘겠지만 하이브리드의 특기는 '작명'이다. 정형돈의 둘째 딸에게는 '정발산기슭곰발냄새타령부인사잘해'라는 역대 최강의 파격적인 이름을 선사했다. 솔직히 너도 나도 주창하는 '통합' '혁신' '개혁'이 대체 무엇이고 서로 어떻게 다른지, 죄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왜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인지 이해할 수 없는 시대, 우리에겐 하이브리드의 센스가 더 간절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통합진보당 탈당파가 새 당명으로 '진보정의당'을 결정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진보가 '정의'를 의미했고 정의가 진보의 핵심 가치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보수·진보 정치인 너나 할 것 없이 입만 열만 외치는 식상한 구호인 "정의가 강물처럼"도 떠오르고, 저 옛날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하이브리드 샘이 솟아 리오레이비에게 작명을 맡기는 건 어떨까. 하이브리드는 아마 이렇게 먼저 '선빵'을 날리지 않을까 싶다. "정신차려이각박한세상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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