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에 오시면] (19) 자주 적극적으로 우포늪을 관찰하시기를 바라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가 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이죠? 당연한 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느끼는 일을 우포에서 다시 한 번 경험하였습니다. 우포의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이면서, 많은 우포늪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사지포의 이태리포플러들이 지난여름 태풍으로 넘어져 있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여러 그루가 함께 서 있던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고 아름다웠습니다. 인간의 오복 중의 하나라는 치아가 가지런히 잘 있다가 몇 개가 중간중간에 빠진 것처럼 넘어져 있습니다.

지난 2003년 매미 태풍 때는 지금보다 나무들이 작아서 그런지 넘어지지 않고 잘 자라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포늪 중 하나인 사지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제 그 모습들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을지 모르나 저처럼 오랫동안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사진을 남기지 못했거나 앞으로 우포늪을 처음 방문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못 보게 되어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이나 그 자리에 오랜 세월 변함없이 있어 왔던 물건이 떠나 버렸을 때나 없어지거나 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더욱 느끼게 되면서 후회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 같습니다.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사지포의 이태리포플러들. 이제 그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안타깝다. /경남도민일보DB

오래 전 저의 어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 친척 한 분이 "니 엄마 목소리라도 녹음해 놓아라. 언젠가 듣고 싶을 때 들어 보거로" 하신 게 생각납니다. 미루다 보니 녹음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포의 떨어지는 낙엽들도 아름다운 이 가을에 우포늪에 가족과 함께 오신다면 같이 오는 분에게 "네가 있어 고맙다"고 말해 봅시다. 그렇게 말하기가 쑥스럽다면 "네가 있어 너무 좋네"라고 해도 되겠죠? 혹시 공부한다고 고생하는 아들과 딸에게는 "나는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웃음 띤 얼굴로 "아들(또는 딸)" 하면서 말이 필요없이 그들이 한 행동을 보고서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올려보시는 것은 또 어떨까요? 표현하는 우포늪의 방문자가 되어 봅시다. 특히 어머니들보다 표현 덜하고 못하는 우리 경상도 아버지는 꼭 그렇게 표현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마음에만 두지 말고 표현해 봅시다. 약간은 엉뚱한 생각이겠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당신의 그 사랑을 자주 저금해 놓으면, 나이 들어 외로울 때 아들과 딸이 언젠가 당신을 찾아 와 당신의 '사랑 표현 적금'을 돌려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며칠 전 우포늪생태관에서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들어오고 싶어 했던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 아이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1명씩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억양을 들어보니 서울이나 경기지역 같은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의 말씨였습니다. 그냥 못들어 간다고 하기엔 야속하고 그냥 돌려보내기엔 미안해서 생태관 앞에 핀 우포늪 대표식물 중의 하나인 가시연꽃을 보면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마침 연못에 떠다니는 씨앗 하나를 건져 만져보게 하니 특이한 감촉을 느껴서 그런지 신기해 하였습니다. 우포늪생태관 안에만 일 년에 11만 명 정도나 오지만 이렇게 적절한 시기에 와서 가시연꽃을 만져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니 더욱 좋아했습니다. 가시연꽃의 씨앗은 약간 붉은 색을 보이는데 여성들이 애를 낳았을 때 양수에 어린애가 싸여 있는 것처럼 되어 있어 물위에 잘 떠다니다가 나중에 그 부분이 벗겨지면 물에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일반 연은 럭비공처럼 생긴 씨앗에서 싹이 나서 잎과 줄기가 난 뒤 꽃을 피우며 우리 인간들에게 연근이라는 먹을 것을 제공 해줍니다. 가시연은 대부분 콩의 씨앗 크기 비슷한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는 1년생입니다. 늦게 와서 생태관에 들어가지 못한 그 아이들에게 가시연꽃을 설명한 뒤, 우포늪의 또 다른 대표 식물 중의 하나인 마름(말밤)을 보여주고 만지게 하면서 마름의 생태에 대해 설명한 뒤 제가 개발한 마름춤을 보여주고 같이 하니 표정이 밝아져 엄마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동영상도 찍고 만족해 하였는데 우리 창녕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산토끼노래'가 우포늪 인근 이방초등학교에서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말해주니 너무도 좋아하고 즐거워하여 저 또한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그 가족을 보냈습니다.

우포늪을 방문하는 많은 분들이 시간이 없거나 거리가 멀어 우포늪에 자주 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왔다가 보고 우포늪의 진면모를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포를 제대로 보고 이해하려면 결코 한 번 와서는 절대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우포늪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포늪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우포늪을 적극적으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특정한 장소에서 여러 번 오랜 시간 있으면 평소에 못 보는 특이한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포늪의 많은 모습 중 어느 날 새벽 물안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사지포 제방에서 우포 쪽을 보니 물안개가 있었는데 느리면서도 약간은 보란 듯 조금 빠르게 오른쪽의 다른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정지하지 않고 계속해 움직이는 그 물안개의 모습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물안개의 순간순간이 감동적이라 이래서 우포늪의 물안개를 특이하고 신비롭다고 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포늪에 오셔서 혹 운이 좋으면 십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우포늪을 관찰하면서 예술사진을 찍는 정봉채 사진작가를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작가의 사진에서는 연출된 사진이 아니라 우포늪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자연 그대로의 멋있고 진귀한 예술 장면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자주 적극적으로 우포늪을 찾아와 관찰하는 분들에게 우포늪은 아름답고 진귀한 예술 장면을 선물하는가 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은 우포의 어떤 특정 장소에서 한 번은 오소리 무리를, 또 어떤 때는 멧돼지 무리가 해질녘의 우포늪을 다니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어쩌다가 한 번 오는 방문객들이라면 쉬이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 중의 하나인 국화를 주제로 한 시 한 수를 독자들에게 바칩니다. 우포늪 인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한학자 청강(晴岡) 하재승(河在丞) 선생의 글입니다.

"국화야 너는 어찌하여 구월 서리를 맞고서야 매양 꽃이 피느냐/ 냉하고 차가운 것은 품어내고 한낮 따뜻한 빛을 쪼이고 있네/ 내 집 빈터에서 너 홀로 빼어나게 피었으니 한결같이 너를 아끼는 것인데/ 저녁과 함께 꽃이 떨어지면서도 꽃향기를 여러 곳에 풍기는가// 예부터 집을 평탄케 한다 하여 이름을 더해서 불렀고/ 지금은 도자기의 잔 위에서도 너의 이름을 부를 수가 있구나/ 누가 꽃 중의 왕 국화꽃을 길러서 오늘의 너를 있게 한 것인지/ 늦은 가을 하늘 아래 아름다운 이 꽃이 큰 어른이 되었구나"('국화(菊花)' 전문)

/노용호(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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