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에 졸업한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추석 인사와 함께, 지금 암 투병 중인 친구에게 응원 영상을 보낼 건데 메시지를 부탁해왔다. 창원삼성병원에서 생후 두 달도 안 된 둘째 딸아이가 폐혈증으로 입원해서 심란한 추석을 보내고 있던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지현이. 큰딸 이름을 지현이라고 지었을 때 자신과 이름이 같다고 무척 좋아했었다. 산후조리원이며 집이며 꾸준히 찾아와 지현이 커 가는 걸 지켜봐주었다.

내가 담임이었던 당시에 결혼을 하고, 3학년 졸업을 하는 동안에 임신과 출산을 지켜봤으니 더 없이 각별하다면 각별할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런 지현이가 올해 스승의 날에 한 번 찾아오고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둘째를 낳고 더위가 한풀 꺾이려는 9월 어느 날에 지현이가 연락을 해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밝아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대화 중반부에 가서 지금 소아암으로 서울 병원에서 투병 중이라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선생님 출산하는데,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동안 알리지 않았다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소아암이, 꽤 많이 진행되었다고 했다. 허리가 아팠던 것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고 했다.

우린 지현이 얼굴이 곧잘 빨개져서 '빨갱이'로 불렀는데 그 사랑스러운 별명이 무시무시한 병을 품고 있었다니. 지난날 허리가 아프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야간자율학습을 빼달라고 했을 때마다 타박을 준 일이며, 집에 놀러와서 곧잘 드러눕는다고 눈을 흘겼던 일들이 떠올라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을까. 그런데 오히려 출산한 나를 걱정해주었다. 힘들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씩씩하게 대답했다.

"한 달은 정말 많이 울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괜찮아요. 여기 병동에 어린 아이들, 정말 귀여워요. 그애들 보면 너무 어린데 많이 아파서 마음이 아파요."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지현이가 자주 해준 말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눈물겹게 고맙다.

학생들과 생활하다보면, 준 것보다 받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지현이도 내게 그런 존재이다.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준 고마운 존재. 이제는 내가 그 애를 응원할 차례이다. 항암치료 잘 견디고, 조혈모세포 이식도 잘 되어서 우리 약속한 내년 8월에 꼭 만나자.

   

지현이에게 보낼 영상을 찍고, 열흘의 입원 끝에 아이를 안고 병원을 나섰다.

가을 하늘은 더 없이 맑다. 지현이가 병원에서 보고 있을 하늘도 더 없이 맑았으면 좋겠다.

/심옥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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