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고속도로 갓길 운전자 졸음쉼터

- 음주운전보다 졸음운전이 무서운 이유?

: 음주운전은 그래도 눈을 뜨고 운전한다

음주운전이 더 안전하다는 게 아니다. 졸음운전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다. 고속도로에서 그 끔찍한 위험을 피하고자 어떤 운전자는 갓길에 차를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갓길은 갓길대로 또 위험하다. 고속도로 교통사고 상당 수는 갓길 주차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고속도로에는 부쩍 '졸음쉼터'라는 게 곳곳에 생겼다. 갓길보다 더 안쪽으로 우회 도로를 만들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휴게소만큼은 아니겠지만, 지친 운전자에게는 고마운 곳이다.

줄지어선 차들은 고속도로 위를 흐르는 피곤함을 반영한다. 졸음쉼터가 아니었다면 무작정 흐르고 있을 피곤함이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다행이지만 끊임없이 다른 차를 위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고속도로 곳곳에 있는 전광판에서는 졸음운전을 경고하는 글귀가 계속 흐른다.

'졸음운전, 달리는 폭탄입니다', '고속도로 졸음운전 매년 120명 사망'

컨테이너, 큰 트럭, 활어차 그리고 승용차까지…. 가까스로 피난처를 찾은 차들은 겨우 허락된 몇 분 안 되는 시간과 좁은 공간을 차지한다. 운전석 시트를 뒤로 길게 눕혀 잠든 운전자는 밖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승용차 한 대에서 뒷좌석에 앉았던 남성 한 명이 밖으로 나온다. 머리가 부스스하고 표정이 일그러진 게 꽤 오래 잠이 든 모양이다. 그는 잠시 좌우를 살피더니 벽 한쪽에 소변을 본다. 물론, 이 공간에서는 전혀 허락할 수 없는 행위다. 몇㎞ 뒤에 휴게소가 있다는 안내도 있지만 급한 일은 해결하고 볼 일이다.

쉼터 옆에서는 시속 100km는 가뿐하게 넘을 차들이 순식간에 지나친다. 차 안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밖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는 속도다. 그 안에 갇힌 사람들 중 누군가는 또 무거워진 눈꺼풀과 힘겨운 싸움을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시간에 쫓기지 않거나, 잠깐 여유가 있는 이들이 졸음쉼터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쉼터로 차로를 바꾼 대형 트럭이 가장 끝 줄에 차를 세운다. 어느덧 줄이 밀려 진입로 근처까지 차를 세워야 했다. 진입로 근처는 아직 갓길이나 다름없다. 진입로에서 조금 더 들어와야만 안전한 주차 공간이 확보된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안쪽으로 들어와 담배를 꺼내 문다. 의자 위에서 한숨 잘 시간은 없고, 그렇게 가물가물한 정신을 깨우는 정도다. 그나마 담배 한 개비를 오래 물고 있을 틈도 없이 전화가 왔나보다. 전화를 받고 담배를 비벼 끈 운전자는 곧 차에 올라탄다. 가장 늦게 들어온 차는 가장 일찍 들어온 차보다 빨리 쉼터를 빠져나간다.

   

다시 들어온 트럭에서 운전자가 내린다. 그는 내리자마자 전화를 건다. 얼마 있지 않아 한참 앞에 세워 둔 트럭에서 운전자가 내린다. 그는 뒤에 도착한 운전자에게 다가가 작은 소포를 건네받는다. 그리고 두 운전자는 헤어진다. 주고받은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쉼터는 그렇게 또 다른 기능을 한다.

잠깐 단잠을 잤을 듯한 운전자가 차에서 내린다. 그나마 늘어진 몸을 각성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듯 그도 담배를 꺼낸다. 급하게 몇 모금 빨다 차에 오른 그는 단잠에 쏟은 시간을 만회하듯 급하게 차를 가속한다. 부리나케 차가 빠져나간 자리로 또 다른 차가 들어온다. 고속으로 흐르는 고단한 일상이 그나마 잠시라도 멈추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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