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게 이런 곳] 고성 문수암

고성군 상리면 무선리 무이산(549m) 정상 아래에는 문수암이 자리하고 있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앞으로는 한려수도 쪽빛 물결이 펼쳐져 있다. 문수암은 신라시대 688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이곳에도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의상대사는 남해 금산으로 기도하러 가던 중 고성군 상리면 무선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한 노승이 어디선가 나타나 "내일 아침에는 걸인을 따라 금산 아닌 무이산으로 먼저 가라"고 말했다. 물론 꿈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정말로 무이산으로 향하는 걸인이 있었다. 의상대사도 이 발걸음을 따랐다. 마침내 무이산 중턱에 오르자 눈앞에 보석 같은 섬이 반짝이고, 다섯 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걸인은 바위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라 했고,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걸인과 함께 손잡고 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의상대사가 그 틈새를 살펴보자 걸인 아닌 문수보살상만 보였다. 그때야 깨달았다. 꿈 속 노승이 관세음보살이며, 두 걸인은 '문수'와 '보현' 보살임을 말이다. 이에 의상대사는 "이곳이야말로 산수 도장이다"라며 문수암을 세웠다 한다. 문수암 인근에는 부속암자 보현사·약사전도 함께 들어섰다.

/박민국 기자

창건 이후 수도 도량으로 많은 고승을 배출했고, 해동 명승지로 유명했다. 화랑 전성시대에는 국선 화랑이 이 주위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고도 한다. 설화 속 걸인이 사라졌다는 석벽 사이, 그러니까 본채 오른쪽 뒤편 석굴에는 오늘날에도 문수보살상이 보인다 하여 수많은 불자가 찾는다. 하지만, 모두에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 역시 탐욕에 찌든 자들 눈에는 그냥 돌로만 보일 뿐이다. 설령 보이지 않는다 하여 실망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닦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법하다.

문수암에는 1973년 이곳에서 수도한 이청담의 사리를 보관한 사리탑이 있다. 암자는 중건을 몇 차례 거치다, 1959년 태풍 사라 때 완전히 무너졌다. 지금 암자는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것이다. 따라서 이 절을 찾았을 때 예스러움을 느끼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이 이 절을 빛낸다.

절이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한려수도 경치를 담을 수 있다.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사이마다 고개를 내밀고 있다. 청명한 가을에 찾는다면 하늘·바다 빛이 구분되지 않는다. 바로 앞 산봉우리가 시선을 좀 가로막기는 하지만, 이 또한 운치를 더한다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면 부속암자인 약사전 금동불상이 보인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금동불상이 공중부양한 듯하다. 혹자는 그 느낌에 대해 '브라질 예수상'을 떠올리기도 하나보다.

이 금동불상은 바다에 등을 돌리고 있다. 멀리서 볼 때는 그 까닭이 궁금하지만, 발걸음을 옮겨 금동불상 앞에 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바다에 안겨 미소 짓는 금동불상 모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수암은 500m 고지에 자리하고 있어 등산객들이 찾기에도 좋다. 물론 포장된 도로가 있어 차가 입구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문수암에서 바라본 보현사 금동불상./박민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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