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뷔페서 여는 돌잔치

뷔페 입구 예약 명단에는 세 가족이 이름을 올렸다. 왕자님 둘, 공주님 하나다. 이름만 달랐지 모두 같은 돌잔치다. 찾는 사람 이름을 말하면 안내 직원은 스티커를 팔에 붙인다. 세 가지 색깔 스티커가 세 가족 손님을 구별한다. 손님들은 따로 마련된 방으로 각각 흩어진다.

턱시도를 입은 아빠와 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곱게 차려입은 아이와 함께 손님을 맞는다. 옷은 뷔페와 돌잔치 계약을 하면서 이벤트와 함께 묶음 상품에 들어가는 품목이다. 손님들은 이제 인물이 나기 시작하는 아이와 한 해 동안 애쓴 부모에게 저마다 덕담을 건넨다. 인사를 나눈 사람들은 엄마 또는 아빠에게 조용히 봉투를 건넨다. 돌잔치 때 돌 반지는 매우 보기 어려운 선물이 됐다.

아이 엄마는 출산 이후 가장 많은 손님을 한 번에 대접하는 자리다. 일상 속 고단함을 화사한 옷과 화장으로 어느 정도 가렸지만, 아이 키워 본 부모들은 금세 그 수고를 알아챈다.

   

"애가 작아서 걱정이에요."

"먹기는 잘 먹고? 잔병치레는 안 하고? 그러면 아무 문제 없어요. 어느 날 순식간에 큰다니까. 잘 먹고 아프지만 않으면 아무 걱정 안 해도 돼요."

자신감 넘치는 선배 엄마 말에 주인공 엄마는 안심한다. 그래도 아이에게 뭐 좋은 게 없는지 묻고 또 묻는다.

"아이가 아주 예뻐요. 엄마 닮았어요? 아빠 닮았어요?"

"아직 모르겠어요. 자기도 빨리 아기 낳아야지."

부러움이 가득 담긴 후배 엄마 앞에서 주인공 엄마는 곧 의젓해진다.

손님들이 뷔페 음식을 두세 접시쯤 먹는 시간에 사회자가 방 가운데서 행사를 준비한다. 마이크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장치들을 점검한다.

"잠시 뒤 이벤트를 시작하겠으니 자리 비우지 마시고 참여해주세요."

   

신나는 음악이 시작되고 사회자가 다소 과장된 말투로 분위기를 돋운다.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약간 크다 싶었지만, 사회자는 손님들에게 호응을 끌어내는 말과 동작으로 눈길을 주인공 가족 쪽으로 모은다. 간단한 지시에 잘 따르는 손님을 눈여겨 봐뒀다가 작은 선물을 전해주는 기교도 빼놓지 않는다.

곧 조명이 꺼지며 무대 앞 스크린에 주인공 가족이 보낸 지난 1년이 영상으로 흘러나온다. 기억조차 남지 않았던 일상은 모아놓으니 큰 추억이었다. 주인공 엄마와 아빠는 그 자리에 모인 누구보다 영상에 빠져들었다. 영상이 끝나자 아빠는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아내를 항상 돕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익살스러운 야유가 분위기를 또 띄운다.

곧 돌잡이가 이어진다. 옛날 돈, 실, 연필이면 충분했던 돌잡이 물건은 훨씬 다양해졌다. 예부터 전하는 기본 품목에 마이크(연예인), 축구공(스포츠 선수), 청진기(의사) 같은 게 더 붙었다. 아빠는 괜히 마이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아이는 냉큼 축구공을 잡는다.

이런 돌잔치는 옆방에서도, 그 옆방에서도 같은 순서로 진행됐다. 예전에는 특별했던 이벤트가 이제는 다를 게 없는 이벤트가 된 지 오래다.

전자 바이올린 연주 공연을 끝으로 돌 이벤트는 마무리됐다. 아빠와 엄마와 아이는 다시 테이블 이곳저곳을 돌며 늦게 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계속 서 있었던 이들은 한 자리씩 차지해 겨우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고단한 행사지만 또 언제부터인가 당연한 것처럼 돼버린 행사다.

오랜만에 많은 손님을 치른 엄마는 쉽게 피곤해졌다. 화사한 옷과 화장도 그런 피곤함을 감추지는 못했다. 몇 시간 동안 아이를 안고 다니던 아빠도 피곤을 호소했다. 평소 집에 늦게 들어오는 아빠가 하루에 그렇게 오랫동안 아이를 안고 있었을 리 없다. 그래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아빠 품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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