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을 살리자 삶을 바꾸자] (30) 창녕 도랑살리기 운동 본격화

다가오는 주말 온천에 발을 담가 피로를 풀고, 그 뜨거운 물에 삶은 계란을 먹으면 속도 든든하겠다. 경남도와 창녕군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부곡온천관광협의회가 주관하는 부곡온천축제가 오는 12일 막을 올린다.

지금 창녕군 부곡 온천지 일대는 축제 전야다. 여기에 가을걷이도 겹쳐 온천 상인들과 주민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축제를 맞아 들떠 있는 온천지에서 1㎞ 남짓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창녕군 부곡면 부곡마을도 분주한 모습이다. 마을은 경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108호인 벽진 이씨 고가 덕에 기와집들만 모여 전체적으로 고즈넉한 풍경을 연출한다.

문화재 보호와 관리를 중요시해 흙담을 쌓거나 현대식 집에도 기와 모양 지붕을 씌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정착했다는 벽진 이씨의 집성촌으로 지금도 자손들이 살고 있다.

물길 정비 이전 모습. 흙과 잡풀이 뒤엉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신의회

마을 주변 논에는 추수 작업이 한창이고, 쓰레기와 잡풀만 가득했던 마을 도랑에도 올해 들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 도랑은 인가를 가로지르지 않고, 마을을 다소 비켜 흐르기 때문에 예전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물은 다행히 오염이 그리 심하지 않고, 마을은 하수 시설도 갖추고 있단다. 창녕 부곡면과 밀양 무안면의 경계가 되는 덕암산(544.5m) 자락에서 흘러온 물줄기는 부곡마을 옆을 따라 흐르다 부곡 강정천으로 이어진다. 강정천은 나중에는 창녕함안보 근처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도랑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된 것이 추석 직후였다. 마을 도랑 가운데 약 500m 구간에서 대대적인 물길 정비가 이뤄졌다.

   

도랑 옆 콘크리트 도로는 승용차 한 대가 지나다니기에도 비좁을 정도로 폭이 좁아 굴착기가 들어가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큰 굴착기가 작은 굴착기를 싣고 와서 도랑에 투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만큼 부곡마을 도랑 살리기의 시작은 참 힘이 들었다.

수십 년 동안 방치돼 있었던 도랑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2m 이상 높이로 쌓여 있는 콘크리트벽 탓에 도랑은 상대적으로 푹 꺼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류 쪽에는 빨래터가 있다. 2~3명이 앉을 수 있는 시멘트 바닥이다. 대부분 70~80대 어르신임에도, 주민들은 아직 이 차가운 바닥에서 빨래를 한다. 수질 오염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어 대책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물길 정비 이전에 도랑 상류에서부터 하류까지 퇴적이 아주 심했다는 것이다. 굴착기를 동원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흙과 잡풀이 뒤엉켜 쌓인 양도 많았지만,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흙과 풀을 걷어낼수록 쓰레기도 대거 함께 발견됐다.

퇴적이 심했다는 것은 물길이 가로막혀 있었다는 얘기다. 무성한 풀에 가려 물길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일정한 흐름도 유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군데군데 물이 고여 부유물만 늘어나고 악취도 풍기고 있었다. 가운데 물길을 잡고, 양옆 둔치를 남겨둔 채 흙과 풀 등을 모두 걷어냈다.

워낙 퇴적이 심했기에 벽면을 따라 30~40㎝ 높이로 흙이 쌓인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후 둔치에는 창포를 심었다. 모두 4000포기. 많은 비가 와도 창포는 쓸려 내려가지 않고 뿌리로 땅은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도랑이 쓰레기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도랑변에 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도랑도 깊고 나무에 가리니 쓰레기를 마구 버려도 숨기기 쉬웠다. 이 때문에 나무를 베어내고 다시 심는 작업이 병행됐다. 약해진 경사면을 보호하느라 사람 무릎 정도로 키가 낮은 백일홍을 심기도 했다. 주민들은 벼와 콩, 양파 농사에 도랑 물을 끌어다 쓰기도 한다. 유량이 풍부하지 않을 때가 잦은데, 이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모든 도랑 살리기 작업에는 창녕군 부곡면 청년 봉사단체인 '신의회'가 중심에 있다. 신의회는 30년 전통으로 부곡면 온천장 일대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벌여 왔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겨울이 오기 전에 부곡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정화 활동을 함께 벌일 계획이다.

하류 쪽 마을 당산나무인 은행나무 아래 터는 그늘이 지고 옆으로 도랑이 흘러 농사 짓는 주민들의 쉬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 쉼터 시설을 제대로 조성할 생각이다. 도랑 살리기가 마을 가꾸기로 이어지는 셈이다.

신의회는 부곡마을 도랑과 함께 강정천 살리기에도 나섰다. 하지만, 강정천은 범위가 워낙 방대해 물길 정비보다는 우선 정화 활동에만 신경을 쓰기로 했다. 부곡면 도랑 살리기가 중요한 이유는 침체한 지역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 될 수도 있어서다.

지난 1973년부터 개발돼 한때 전국적으로 이름났던 국내 최고온도 유황온천인 부곡온천지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온천을 하는 관광객들이 인근 부곡마을에 잠시나마 머무르면서 옛 농촌의 정취를 누릴 수 있는 순간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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