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 (54) 의병박물관 김상철 학예연구사

의령은 현재 의병의 고장 발상지답게 의병관련 인프라구축 사업이 한창이다.

그 중 하나로 결실을 본 것이 의병박물관. 의병박물관은 1만 2974㎡의 터에 전체면적 2745㎡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규모로, 고고역사실과 의병유물전시실, 특별전시실, 영상실, 수장고 등으로 꾸며져 있다.

여기 의병박물관 탄생의 주인공인 김상철(45) 학예사.

그는 1992년 의령 정곡면 예둔리 고분군 발굴과 1993년 의령읍 중동리 고분군 발굴 당시 조사원으로 참가한 일이 인연이 되어 이듬해 의병박물관의 전신인 의령박물관 학예사로 채용됐고, 이듬해 의령 처녀와 결혼해 2녀 1남을 둔 완전한 의령사람이다.

   

경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이후 대의면 천곡리 고분군 발굴, 용덕면 운곡리 고분군 발굴, 부림면 경산리 고분군 발굴 등 많은 고분군 발굴 조사와 문화재조사 등에 참여해 그동안 고대사에서 베일에 가려 있었던 의령지역의 역사를 규명하는데 힘써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대학을 진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사학가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된 거죠. 1993년 당시 제가 처음 의병학예사로 발령받던 날, 그저 막연했던 고고학자의 길보다, 인연이 된 의령지역의 역사를 좀 더 밝혀내고, 조명해야겠다는 순간의 형광성 같은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그런 다부진 각오가 오늘날 명실 공히 전국의 의병을 대표하는 박물관답게 각급 학교의 단체관람과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예연구사는 보통 학예사(學藝士) 또는 큐레이터(curator)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술작품과 유물에 관한 전문지식은 물론, 전시 의도를 관람객들에게 잘 전달 할 수 있도록 기획할 수 있는 창의성과 혁신적 사고가 요구되는 전문 직종이다.

그래서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각종 유물과 표본·사료·문헌들을 수집·정리·보존하고 유물·유적의 발굴조사에 참여하기도 해 대학원에서 관련 전공학과를 이어올 만치 전문 스펙을 쌓아온 그다.

그는 '의령지역 가야고분문화에 대한 일고찰'이란 제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의령의 선사와 가야문화, 의령의 역사·문화 유적, 의령박물관 도록, 의령 문화유적 분포지도, 악사 우륵과 의령지역의 가야사, 곽재우 장군과 수리사, 가야지역 묘제의 외계요소에 관한 고찰 등 많은 학술활동과 책자 발간에 참여했다.

그의 노력으로 의령지역 고대사는 어느 정도 실체가 규명되기에 이르렀다.

의령읍 중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유물에서는 소가야와 아라가야 토기가 발견됐고, 신반 경산리 고분군에서는 고령가야와 창녕 비화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는 과정을 보면서 의령지역이 어느 나라에도 속국 되지 않았던, 중립국 역할을 해 온 특유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었던 성과물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2월 의병박물관 전시공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박물관 전시기획과 유물대여·수집, 전시패널 원고작성, 영상물 시나리오 작성, 전시유물 분류 등 1인 5역을 해내며, 6월 1일 박물관 개관일까지 주말을 비롯한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야간작업까지 병행했단다.

3개월 남짓한 기간에 박물관 개관을 이끌어 내는 저력을 보인 것이다.

타 국·공립 박물관에서 학예사 3∼6명이 일 년이 넘는 시간을 준비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간의 그의 노고와 고뇌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의 노력에 대한 보답일까. 의령박물관은 공립박물관의 한계를 넘어 하루 300∼1000명의 많은 관람객이 찾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그는 전공분야인 고고학을 넘어 요즘은 의병관련 연구에도 심취해 있다.

의병박물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의병관련 자료들을 두루 섭렵하고 올해 의병의 날 행사에 첫선을 보인 정암진 전투 재현에 역사적 고증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의병의 날 행사를 전국적 규모의 행사로 특화시키고자 곽재우 장군의 전술이기도 한 횃불을 이용한 오지거 축제도 구상 중이다.

의령에서 공직생활 20년째를 맞는 그의 꿈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의령의 미래를 위한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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