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오동동 이야기] 누구나 있을법한 창동의 추억…다시 '차곡차곡'

창동 하면 저는 고갈비 생각이 가장 먼저 납니다. 세월을 더듬어 보면 벌써 수십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학생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특별한 행사처럼 예비역 아저씨들과 어울려 봉림동 골짜기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창동으로 나왔습니다. 그 시절 창원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습니다. 학교 주변에는 포장마차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창원에서 창동으로 오면 시골에 살다가 도시로 나온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시끌벅적한 부림시장, 어시장, 휘황한 불빛, 오고가는 사람들의 물결…. 지금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 시절 창동은 시골에서 올라왔거나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적당히 주눅이 들게 만들었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늘 주머니가 가벼웠지만 간혹 여윳돈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찾은 곳이 창동 고갈비 골목이었습니다. 그 즐거움은 어디에도 비길 수가 없었습니다. 고갈비 하나를 시켜놓고 소주를 서너 병쯤은 너끈히 마셨습니다. 어떨 때는 고등어 가시를 쪽쪽 빨아가며 네다섯 병씩을 마신 적도 있습니다. 뭐든지 지나놓고 보면 그렇지만 그 때 먹었던 고갈비는 지금 한우 갈비보다 더 호사스러운 안주였습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에 다녔던 그 시절 공돌이 공순이들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불렀습니다) 치고 창동에다 추억 몇 가지 묻어두지 않고 떠난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창동은 많은 이들에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마산 하면 많은 사람은 3·15 의거를 떠올립니다. 1960년 이승만의 부정 선거에 대항하여 일어난 3·15 의거는 후일 4·19 혁명을 촉발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고 이는 해방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전기를 마련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런 역사적인 3·15 의거의 시발점이 바로 창동이었다는 것을 마산에 살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0년 국가기념일로 승격이 된 3·15 의거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비해서 정작 지역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창동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시민극장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가 되기도 했고 거기에서 애마부인이나 뽕,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가 나오는 영화 한두 편 보지 않은 이가 드물었을 겁니다. 1995년 창동의 내리막과 함께 문을 닫은 시민극장은 한일병합 이전에는 마산 미니소라는 이름으로 노동야학을 열고 시민사회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병합 시절에 일본인 소유로 공락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해방 이후 시민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뀌게 되는데, 이곳에서 1950년 6·25 전쟁 당시 보도연맹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희생당한 무고한 민간인들이 1681명이라고 합니다.

   

창동 네거리를 중심으로 걷다보면 1955년에 문을 연 학문당 서점과 시위 때마다 타깃이 되었던 남파(남성동파출소), 이젠 찾아보기 힘든 레코드판을 팔고 있는 명곡사, 최초 민간도서관인 책사랑, 미스 경남을 가장 많이 배출한 스왕미용실 등 연륜과 역사를 느끼게 하는 가게들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한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칠만큼 영화를 누렸던 창동은 한일합섬이 이전을 하고 수출자유지역의 규모가 줄어들어드는 대신 인근 창원이 공단으로 성장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창원 신시가지의 불빛이 환해질수록 반대로 창동의 거리는 썰렁해졌습니다.

쇠락의 길을 걷던 창동에 한줄기 빛이 비치게 된 건 마창진 통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창진 통합에 대한 의견은 지금도 지역민들마다 분분합니다. 그러나 창동만큼은 통합의 덕을 톡톡히 보게 된 셈입니다. 만약 통합이 되지 않았다면 창동예술촌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다들 동의를 하니까요.

   

창동예술촌에는 회화, 공예, 조각, 도예, 사진, 탱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직접 체험을 할 수도 있고, 예술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눈 구경을 해도 좋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주말에는 작가들의 작품을 팔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을 열면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낭만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찾아볼만한 곳입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들도 좋습니다. 창동에다 추억을 묻어두고 떠났던 분들 아련해진 추억을 더듬어보러 오신다면 더없이 즐거우실 겁니다. 창동과는 무관하지만 함께 어렵고 아픈 시절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발길을 해도 좋을 곳입니다.

   

누군가는 추억을 만들고, 또 누군가는 추억을 더듬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 그런 창동을 꿈꾸며 그 역할을 새롭게 시작하는 창동예술촌 사람들이 더 많이 제대로 해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블로거 달그리메 http://dalgrim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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