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딴에 1기 역사체험단] (2) 하동·구례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 역사체험단은 원칙이 몇 가지 있다. ①한 군데서 하나씩은 확실하게 익히기 ②즐겁게 놀기와 열심히 공부하기와 배운 만큼 기록하기의 조화. 이를테면 이렇다.

9월 8일 역사체험단의 두 번째 나들이는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찾았다. 최참판댁~고소산성~쌍계사~운조루~매천사당이었다. 최참판댁 가면서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어른이 생각하는 것처럼 깊이 있게 할 수는 없다. 역사체험단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토지>와 박경리를 거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 타고 가는 도중에 <토지>의 줄거리나마 읽어보게 한 다음 단답형 퀴즈를 낸다. '박경리의 고향이 하동일까요? 아닐까요?'도 있고 '서희 남편 길상의 신분은 무엇일까요?'도 있다. 여기서 역사체험단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거의 기대하지 않았는데, 출제한 13문제 모두를 맞힌 친구도 있었을 정도다. 현장에서도 과제를 낸다. '서희 아버지 최치수는 하인이던 귀녀 일당에게 불에 타 죽게 되는데 그 장소가 어딘지 알아오세요.'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의논도 하고 훈장을 비롯해 최참판댁 여러 분들에게 물어 답을 찾았다. 바로 초가로 지붕을 이은 유일한 집이라며, '초당'까지 둘러보고 돌아온다.

"최참판댁에 여러 번 왔었는데요, 그 때는 건성으로 대충 봤지 이번처럼 제대로 살펴보지는 않았어요." 역사체험단을 하는 보람이 여기 있다.

건물을 활용해 옛날 사람들 생각도 알아본다. 최참판댁은 남자가 사는 사랑채는 기둥이 모두 둥글고 여자가 머무는 안채와 별당채 기둥은 모두 네모져 있다. 옛날 사람들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이라는 생각이 스며 있는데, 하늘은 높고(고귀하고) 땅은 낮다(비천하다)가 아니라, 음양오행에 따라 남자는 하늘에 견줬고 여자는 땅에 견줬기에 그렇게 했다는 얘기다.

이어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를 지키는 할매나무 밑에 모여 점심 도시락을 먹고 고소산성으로 간다. 날씨가 더워 산성에 오르지는 않고 들머리 한산사 바로 앞 전망대로 간다. 오른편 서쪽에서 왼편 동쪽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그지없이 잘 보이는데, 불어오는 바람과 눈에 담기는 풍경이 거듭거듭 감탄하게 만든다. "풍경이 예술이에요!", "마음이 절로 좋아져요!"

전남 구례 운조루 오미 마을 너른 마당에서 차례대로 그네를 타는 아이들. /김훤주 기자

쌍계사. 이곳 또한 부모랑 자주 와 본 데지만 역사체험단에게는 새롭게 보인다. 통일신라 말기 빼어난 학자였던 최치원이 짓고 쓴 진감선사대공탑비와 불상 부위별 명칭을 배운다. 진감선사는 불교음악인 범패를 처음 들여왔을 뿐 아니라 차나무도 가져와 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탑비가 이름난 까닭은 바로 지은이가 최치원이기 때문이다. 당대에 일가를 이룬 최치원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어서 부처님 명칭. 머리는 꼬불꼬불해 '나발'이라 하며 손모양은 '수인', 이마에 있는 점은 '백호', 뒤에 있는 번쩍거리는 배경은 '두광', 입고 있는 옷은 '통견'이며 목에 있는 줄을 '삼도'라 하는 것 등을 익혔다. 부처 앉은 자리(대좌) 위로 우러러 보는 연꽃은 앙련(仰蓮)이고 아래로 엎드린 연꽃은 복련(伏蓮)이라는 정도도 더했다.

함께 소리내어 읽고 적어봄으로써 자기 지식으로 삼을 수 있었는데, 이런 조그만 앎만으로 아이들은 크게 달라졌다. 대웅전 부처 앞에 앉았는데 떠들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이보다 더 조용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실제 불상을 보면서 배웠던 명칭을 실감나게 익혔다. 또 절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옆집 할아버지처럼 모습이 푸근한 마애불도 눈에 담았다.

경남 경계를 벗어나 전남의 구례 운조루로 떠난다.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름(雲)은 무심히 산골짝에 피어오르고/ 새(鳥)들은 날다 지쳐 둥지로 돌아오네"에서 따온 이 집 사랑채 당호(堂號)라 한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1776년 무사 유이주가 세웠는데, 기개를 일러주듯 솟을대문 위쪽에는 호랑이 뼈가 걸려 있다.

쌍계사 대웅전에서 조용히 불상의 명칭을 익히는 아이들.

운조루는 건물보다는 거기 스민 생각이 훨씬 그럴 듯하다. 굴뚝이 없다. 불땔 때 연기 때문에 고생을 했겠지만 양반집에서 밥해 먹는다고 연기를 피우면 가난한 이웃들이 더 힘들어하리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또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쌀뒤주 여닫는 마개에 적혀 있는 글씨도 남다르다. 他人能解(타인능해)가 그것인데,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주인이 손수 줄 수 있는데도 그리 하지 않은 까닭은 얻어가는 이에게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배려다.

운조루가 있는 오미 마을 너른 마당에는 그네와 널이 놓여 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다. 앞을 다툴만 한데도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차례차례 줄지어 그네를 타고 굴렸다. 자기보다 어린 친구를 더 앞세우고 다독여 주는 모습도 보여 고마웠다.

마지막 방문지는 같은 구례에 있는 매천 황현의 사당.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자리가 여기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그 실감이 크게 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이의 유언도 함께 알아보고 자결에 앞서 쓴 절명시(絶命詩)도 소리내어 읽었다. "새와 짐승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린다/ 무궁화 이 세상이 망하고 말았구나/ 가을 등 아래 책 덮고 생각하니/ 세상에 글 아는 이 노릇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다들 재미있어 한다. 힘든 구석도 있지만 하나하나 새롭게 알아가는 바가 즐겁다고도 했다. 그럭저럭 선택과 집중이 잘 돼서인지, 신나게 놀 때와 진지하게 공부할 때가 저절로 구분이 됐다. 구성원 사이 친밀도도 나아지고 있다. 오는 20일(토) 함양으로 떠나는 세 번째 나들이에서는 모든 것이 더욱 좋아지리라.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