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최에녹(30)·박진환(31) 부부

"실명인가요? 세례명 같습니다만…."

"실명 맞고요. 성경에 나오는 사람 이름이에요."

성경에서 에녹(Enoch)은 최초 인간인 아담(Adam)의 후손으로 죽음을 겪지 않은 인물, 즉 시신을 남기지 않고 천국에 간 인물로 묘사된다. 에녹은 남성인데 인터뷰한 최에녹(30) 씨는 여성이다.

"태몽이 남자였다고 해요. 그래서 딸을 낳았는데도 그냥 이름을 '에녹'이라고 지었다더라고요."

에녹 씨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 아버지 사업 때문에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간 에녹 씨는 4년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2001년 10월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해 12월 양산에 있는 기도원에 가족과 함께 봉사활동을 간다. 그리고 기도원에서 박진환(31) 씨를 만난다.

"우리 가족도 정기적으로 기도원 봉사를 가는데, 시아버님도 늘 가족과 봉사활동을 하세요. 그때 진환 씨를 만났지요."

   

에녹 씨에게 당시 진환 씨는 그저 선하게 생긴 얼굴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환 씨는 에녹 씨를 만나고 바로 '가슴앓이'에 들어간다. 에녹 씨가 마다가스카르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부모님께 자신도 마다가스카르로 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그렇다고 진환 씨가 그런 마음을 대놓고 에녹 씨에게 드러낼 만큼 거친(?) 남성도 아니었다. 고민 끝에 택한 방법은 이메일로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처음에는 이메일을 주고받았어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전화 연락을 하게 됐지요. "

그리고 2002년 4월 5일 진환 씨는 미리 연락을 하고 서울에서 에녹 씨가 사는 창원으로 온다. 에녹 씨를 만난 진환 씨는 3~4개월 동안 가슴앓이 했던 시간을 담담하게 에녹 씨에게 풀어놓는다. 에녹 씨는 자신만을 생각했다는 한 남자에게 순수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받아들였다. 나무 심는 날에 이 부부는 서로 사랑을 심은 셈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울에서 창원으로 오더라고요. 그렇게 만났지요. 또 대학 진학도 거들어줬어요."

서울에서 창원을 오가던 진환 씨는 서울에서 부산을 오가게 된다. 그리고 그해 12월 입대한다. 입대하기 전 15일 정도 에녹 씨 집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선하고 늘 상대를 배려하는 진환 씨를 에녹 씨만큼 에녹 씨 가족들도 좋아했다.

"연애를 11년 정도 했는데 싸운 적이 없어요. 제가 사실 욱하는 성격이 있는데, 진환 씨는 절대 같이 부딪치지 않아요. 그 상황을 좋게 피하고 나중에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성격이지요. 그런 면을 부모님께서도 좋게 보셨어요."

진환 씨가 제대하자 에녹 씨와 진환 씨는 바로 유럽여행을 떠난다.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체코, 이탈리아 등 한 달 동안 유럽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에녹 씨가 졸업하자 다시 1년 3개월 동안 둘은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그들은, 그리고 양쪽 집안은 이미 가족이었다. 오히려 11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결혼을 미뤘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어학연수까지 다녀오고 취업을 하니 자리 잡는 게 좀 늦었어요. 진환 씨가 이제 직장생활 2년차예요. 저도 회사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요. 결혼은 아무래도 직장이 정해지면 생각하기로 했던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결혼을 서두를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마냥 신호가 없는 선남선녀를 몰아붙인 것은 에녹 씨 집 어르신들이었다. 할머니와 외할머니 모두 결혼을 미루는 손녀와 손녀사위가 영 마음에 걸렸는지 재촉하기 시작했다.

"우리야 결혼은 늘 일상적으로 얘기했지요. 그런데 어르신들이 재촉하니 올해를 넘길 수 없었어요. 10월 20일로 정한 것도 날짜를 고른 게 아니라 예식장을 예약할 수 있는 날 가운데 가장 빠른 날이 그날이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길일이라고 하네요. 운이 좋은가 봐요."

진환 씨는 얼마 전 에녹 씨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진환 씨는 창원에서 에녹 씨와 자주 만나던 카페에서 이벤트를 준비했다. 하지만, 갑자기 에녹 씨 가족과 저녁 약속이 정해지면서 모든 계획이 뒤틀린다. 예약 주문했던 꽃도 카페에서 급하게 에녹 씨 집으로 돌리고 결국 집에서 프러포즈를 하게 된다.

"진환 씨가 평소 이벤트를 할 때 눈물이 날 정도로 제대로 잘해요. 그런데 하필 프러포즈는 계획대로 안 됐지요. 다른 이벤트와 비교하면 프러포즈는 좀 멋이 없었어요. 또 어찌나 떨던지…."

결혼을 앞둔 에녹 씨에게는 롤모델이 있다. 몇십 년 동안 늘 한결같은 큰 이모부 부부다. 자식들이 있어도 항상 서로 우선으로 생각하는 큰 이모부 부부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부러워했다. 마침 진환 씨가 그런 큰 이모부를 여러모로 닮았다.

"11년 동안 변함없이 늘 잘해줬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볼 때마다 좋아요. 지금처럼만 계속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변하지 않던 모습이 늘 계속됐으면 좋겠네요."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신혼집을 구한 이 예비부부는 오는 20일 결혼한다.

결혼 기사를 매주 월요일 6면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알리고 싶은 분은 이승환 기자(010 3593 5214)에게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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