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부산 영락공원…고인에게 미안함 더는 곳

부산 범어사역에서 시작하는 사람들 행렬은 영락공원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영락공원은 명절 때는 차량 진입을 막는다. 사람들은 15~20분 정도 오르막길을 걸어 땅에 묻힌 그리운 사람을 만난다. 오르막길 한쪽에는 꽃을 파는 사람들이 지나치는 사람들을 부른다. 이날 파는 꽃은 대부분 조화다. 한 번 무덤 앞에 꽂으면 다음 명절 때까지 버텨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쪽 길에는 칡즙, 솜사탕, 돋보기, 왁스 등을 파는 사람들이 한 자리씩 차지했다.

끊임없는 행렬은 묘지로 가는 샛길에서 한 무리씩 갈라진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구분되지 않았던 가족들이 각자 찾는 무덤 앞에서 모인다. 가족 한 명이 자리를 펴고 무덤 앞에 명절 음식을 하나씩 놓는다. 전, 과일, 튀김, 떡 그리고 술병, 그 옆에 작은 종이컵까지. 간소하지만 갖출 것은 갖춘 상차림이 마무리된다. 아이들은 좁은 묘지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야야! 무덤 위로 다니면 안 된다! 무덤 사이로 다녀야지!"

무덤을 손질하며 성묘하는 가족들.

어른 한 명이 다급하게 아이들을 나무란다. 잠시 멈칫한 아이들은 무덤 샛길로 후다닥 뛰어간다. 가족 중 한 명이 큰 가위로 무덤을 손질한다. 마치 이발을 하듯 정성스럽게 풀을 깎아낸다. 옆에서 다른 한 명은 길게 자란 풀을 그냥 손으로 뜯는다. 다른 한 명은 새로 산 꽃을 꽂는다. 먼저 꽂혀있던 꽃은 지난 설부터 지금까지 잘 버텼다. 굳이 버릴 정도로 망가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 꽃과 자리를 바꾼다. 한동안 손이 가지 않았던 무덤은 그렇게 정돈된다.

"야! 어서 이리 온나! 할아버지께 인사해야지!"

멀리 떨어진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무덤 앞에 모인 가족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섰다. 그리고 무덤을 향해 몸을 굽힌다. 길이 좁아 경사진 곳까지 밀린 가족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충 무릎을 굽힌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반절. 인사를 마친 가족들이 무덤 앞에 깐 자리에 앉는다. 어른 한 명이 아이들에게 과일과 튀김을 내민다. 음식을 받아든 아이들은 다시 넓은 길로 후다닥 달려나간다.

큰 나무가 줄지어 서 그늘진 곳에 성묘를 마친 가족들이 자리를 편다. 그리고 준비한 음식들을 가운데 놓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종이컵을 내밀며 술을 권한다. 아들은 머쓱하게 잔을 받아든다.

"명절 때는 이렇게 와야 될 거 아이가. 다음에도 꼭 오자. 딴 데 가지 말고."

아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소주를 한 번에 마신다. 아버지는 술병을 아들에게 건네고 종이컵을 내민다. 아들은 조심스럽게 술을 따른다. 성묘는 잠시 가족 소풍이 된다. 먼저 간 어르신이 만들어준 자리다.

자리를 정리한 가족들이 무덤 앞을 떠난다. 이들이 성묘를 마치고 내려가는 동안에도 성묘를 하러 오는 사람들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성묘를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영락공원 올라가는 길.

길 한쪽에 천막을 쳐놓고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 성묘를 마친 사람들을 부른다. 천막 안에서는 어묵, 국수, 국밥, 도토리묵 그리고 막걸리를 판다. 성묘를 하러 공원에 오면 꼭 이곳에서 막걸리를 한 잔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묵 또는 도토리묵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을 걸친다. 술을 하지 않는 가족들은 어묵 또는 국수를 주로 먹는다.

"다음에는 그냥 명절 되기 전에 한 번 옵시다. 올 때마다 사람들에게 치여서."

막걸리를 한 잔 마시며 형제 중 둘째나 셋째 정도 돼 보이는 이가 말한다. 가족들이 가장 어른인 듯한 이를 바라본다. 그는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켜며 말없이 다시 빈 잔에 술을 따른다.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는다. 제안을 한 이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다시 각자 하던 얘기를 이어간다.

영락공원은 명절 때만 아니면 차로 다닐 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명절 때 오르막길을 좀 걷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1년에 한두 번, 그 정도는 해야 먼저 가신 분에게 덜 미안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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