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오동동이야기] 소담(昭潭)노현섭 선생과 경남항운노조

흔히들 '노조'(노동조합)나 '노조 조합원'하면 이마에 붉은 띠 두르고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좀 무서운(?) 단체나 사람인 줄 안다. 아니 그런 잘못된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필자도 그런 부류에 속했던 사람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나 필자의 그런 선입견은 한 순간에 바뀐다. 바로 '경남항운노동조합(약칭 경남항운노조)'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마산이 항구도시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마산항에 입항한 크고 작은 선박에서 땀 흘려가며 선적(船積)과 하역(荷役)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산 앞바다가 '가고파' 노랫말에 나오는 '내 고향 남쪽 바다'인 줄은 알아도 그 바다를 탯자리 삼아 곡예사처럼 힘겨운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왜일까. '경남항운노조'와 그 조합원들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항구도시 마산에 살면서도 마산항에서 선적과 하역작업을 하는 당사자들이 바로 항운노조 조합원임을, 그리고 그 조합원의 결집체가 '경남항운노조'임을 잘 모른다는 말이다. 필자가 '경남항운노조'를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노현섭 선생 때문이다.

생전 노현섭 선생(앞줄 오른쪽).

아호(雅號)가 소담(昭潭)인 노현섭 선생(1921-1991)은 구산면 안녕마을 출신으로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벌써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명문 중앙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한 엘리트로서 마산의 대표적인 선각자이자 경남항운노조의 창시자이다. 일본유학생 출신으로서 그 당시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좋은 직장을 구할 수도 있었으나, 선생은 험난한 가시밭길에 다름 아닌 '노동자의 대변인'을 자처했으니 이는 필시 선생의 숙명 때문이리라.

마치 희랍비극의 주인공들처럼. 선생인들 권력에의 유혹을 받지 않았겠으며, 권력의 중심부에 서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선생은 그 모든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오로지 악덕 고용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무지하고 순박한 노동자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였음이니 그를 위대한 선각자이자 노동운동의 선구자라 하는 것이다.

전국조직인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은 '전국항만자유노동조합연맹', '전국자유노동조합연맹', '전국부두노동조합' 등의 명칭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고, 마산 출신 노현섭 선생이 바로 '전국자유노동조합연맹'의 위원장(1954년 12월 14일~1955년 6월 4일)을 맡았으니 그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마산지역의 인물이 아니라 전국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요즘에도 노조활동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그 당시임에랴. 문맹자 비율이 80∼90%에 달했던 그 시절에, 노조가 무엇이며 노조가 왜 존재해야 하는 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그 시절에, 개인적인 부귀와 명예를 포기하고 오로지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소담 선생. 노동운동가로서의 선생의 진면목은 그의 일기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지금부터 65년 전인 1957년과 1959년의 육필일기 속에서다.

"'도대체 노동운동이란 무엇인가?'도 알지 못하는 무리들이 자리만 빼앗아서 자기가 어떻게 하든 그 자리에만 앉아있겠다고 날뛰는 것이 오늘 이 시간 한국노동운동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군상(群像)들의 모습이다. 불의의 무리들과 금력의 작용을 받아 광인(狂人)처럼 날뛰는 불순배들과 맞서서 고군분투하는 이재식 동지를 격려하기 위하여 이곳 여수에 도착한 것이 하오 3시 반이었다. 이재식 동지를 만나 각종 보고를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반가운 것은 이번 싸움에 승산이 있다는 단 한마디 말이었다. 김동규 동지도 정(丁)의원 대신하여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다!! 동지애다!!"

"작업을 완료한 지 2개월이 경과하였건만 금일까지 노임(勞賃)이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數多) 노동자들이 집합하여 무책임한 사업주(事業主)의 책임을 규탄하는 소동이 본 조합에서 발생하였다. 무책임한 대한민국의 현실!! 이 책임의 소재는? 한국의 정치가여 반성하라. 비서 정치의 무책임성을 근절하라. 상의(上意)가 하달(下達)되지 아니하고 하의가 상달되지 아니하는 이 모순성!! 동시에 비조직적인 정치체계를 완전히 청산하라!!"

"조운(朝運) 소장 김용운(金龍雲)이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해 달라고 절규하는 행위에 대하여 '빨갱이'라는 망언(妄言)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없이 분개하였다. 그래서 망언에 대한 책임 추궁을 강하게 하였다. 노동자가 굶주림에 못 이겨 노임을 인상해 달라고 절규하는 행위를 빨갱이라고 한다면, '노동자가 작업을 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노임을 주지 않아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놈은 더 한 빨갱이가 아니냐'라고 하면서, 사용주의 행위가 빨갱이보다 더 하다고 비난하는 동시에, 사용주가 노동자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적은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보다 많은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나 노동력이란 상품을 고가(高價)로 팔아 굶주림을 면하려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 하고 따졌다. 논리적으로 따져가면서 비난을 했더니 그 자가 결국에는 사과를 했고, 임금인상이란 정당한 우리의 요구는 관철되고 신년 제1호 투쟁은 우리의 승리로서 종결되었다."

생전 노현섭 선생(서 있는 사람).

전국자유노조 위원장과 현 경남항운노조의 전신인 마산부두노조 위원장을 역임한 소담 선생 업적은 마산부두노조 고등공민학교 설립, 노동병원 개설, 마산체육회 회장 역임 등등 그 외에도 많다. 이러한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10월 '소담 노현섭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이순항)가 발족하였으며, '경남항운노조'(위원장 김명호)가 전폭적인 후원을 하고 있음도 밝혀둔다. 노현섭 선생과 경남항운노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상용(극단 마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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