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모두 같은 말만 한다. 물론 대통령선거 이야기다. 누구는 왼쪽으로, 누구는 오른쪽으로, 누구는 중간에서 좌우로. 각자 지지층 확장 등 '정치공학적 계산'만 급급하니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느새 많은 국민의 고통을 해결할 실질적인 대안은 없이 '통합' '대타협' '화합'의 목소리만 떠들썩한 선거가 되었다.

다 잊은 걸까. 고용불안, 질 낮은 일자리, 자영업의 몰락, 전셋값 급등, 식량안보 위협, 원자력발전소 공포, 성범죄 확산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 국민을 근심케 했던 사안들은 대체 어디로 실종된 걸까. 한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들로부터 이에 관한 뚜렷한 해법을 들을 수 없다면, 해결 가능성을 엿볼 수 없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대선을 치르는 것일까.

문득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인터뷰집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란 책을 떠올렸다. 대선 주자들이 그 무엇도 쉽게 풀 수 없다는 원천적 '불가능성'만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러니 난무하는 건 추상적이고 알맹이 없는 구호뿐이다. 이 책은 그러나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 등을 예로 들며 우리가 실현 불가능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재사유와 재정의를 촉구한다.

지난 7월 통영 어린이 살해사건 현장검증을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마을 주민들. 아동 성범죄 근절은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경남도민일보 DB

예컨대 원전 등 에너지 문제를 보자. 당장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할 순 없더라도 친환경·대안 에너지 확산을 위한 과감한 실천은 왜 안 되는가. 환경파괴 논란으로 시끄러운 남해석탄화력발전소 추정 예산이 무려 8조 6000억 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내 최대 용량의 밀양 삼랑진태양광발전소 건설에 투입된 돈은 160억 원이었다. 물론 설비용량 차가 크지만 비용이나 환경·생태·미래 등을 고려하면 결국 정권의 '의지'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추락하는 식량자급률(26.8%, OECD 회원국 중 꼴찌) 문제도 그냥 넋 놓고 바라만 보는 것 같다. 농촌은 지금 어르신들과 빈집만 차고 넘치는데, 농업 종사자·노동자를 획기적으로 늘릴 방법은 없을까. 일자리 고통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식량주권도 강화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말이다. 온갖 부작용이 빤히 예상됨에도 수십조 원을 쏟아 부어 4대강 사업을 추진한 그 열정과 결기만 있다면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본다.

온 국민을 '멘붕'으로 몰아넣는 아동 성범죄도 정녕 해결책이 없는 걸까. 근시일내 가부장적 성문화를 근절할 수는 없다 했을 때, 가장 실질적인 대안은 부모의 육아 권리를 확실히 보장하는 것일 수 있다. 당연히 이는 기본적인 노동권과 생존권이 지켜져야 가능하다.

경제위기 등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 노동자의 더 많은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금은 쏙 들어갔으나, 한때 '저녁이 있는 삶'까지 화두가 됐던 대선 아닌가. 왜 자꾸 안 되는 이유만 들이대는가. 최소한 '불법(파견)'을 저지르고도 당당한 기업주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단호한 태도와 정책 대안 정도는 내놓고 변명을 해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강력한 의지와 풍부한 상상력만 있다면 더 좋은 해법이 없을 리 없다. 부디 안 된다, 어렵다고 말하지 말라. 지젝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예견"까지 하는 세상이다. 불멸을 논하면서 약간의 의료보험, 사회복지 확대에도 주저하는 모습은 확실히 분열적이다.

아이폰 혁명만 혁명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삶을 '혁명'하자. 불가능한 것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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