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나이에 입문해 후배에 모범…가족·생계·춤 어느 하나 소홀함 없어

"선생님은 큰 돌을 받치는 밑돌과 같은 분이셨습니다."(고성오광대보존회 황종욱 사무국장)

지난 20일 숙환으로 76년간의 삶을 뒤로한 고성오광대보존회 전수교육보조자 허종원(1936~2012) 선생.

돌아보면 삶 가운데 반은 고성오광대와 함께했다.

태어나기는 고성군 동해면에서 났다. 어릴 적 공부도 곧잘 했지만, 11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공부도 손 놓고 할머니 밭일을 돌봐드려야 했다. 머슴살이도 종종했다. 이러한 어릴 적 환경은 허 선생을 강직한 사람으로 만들어 훗날 고성오광대·가정 둘에 정성 쏟을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고 허종원(1936~2012) 선생은 고성오광대 문둥북춤 분야에서 이름을 남겼다. 눈을 감기 전까지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전수 활동에도 열성을 다했다. /고성오광대보존회

20살 되어 결혼해 자식도 넷을 낳았다. 그렇게 평범히 농사일로 가정을 돌보며 살았다. 그러다 1976년 서른 아홉 나이에 고성오광대에 발들이게 된다.

당시 살던 마암면 도전리 명송마을에는 고성오광대에서 활동하는 마을 어른·친척이 많았다. 이들은 끼 많고 흥 아는 허 선생에게 고성오광대 입회를 권했다.

고 허종원(1936~2012) 선생은 고성오광대 문둥북춤 분야에서 이름을 남겼다. 눈을 감기 전까지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전수 활동에도 열성을 다했다. /고성오광대보존회

허 선생으로서는 넷 되는 자식들 머리가 굵어질 때였다. 가족을 한창 먹여 살려야 할 때였다. 그래도 결국 어려운 선택을 했다. 부인 이복순(76) 여사도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이 마을은 고성오광대와 늘 함께하는 분위기였기에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고성오광대에서 활동하던 어른들 가운데는 탈춤에만 미쳐 생계는 뒷전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허 선생은 그러지 않았다. 낮에는 농사일하고 밤에는 춤을 췄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허 선생은 훗날 자식들 앞에서 "논에다 너희 어머니 발들이게 한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고성오광대는 탈춤을 추며 재담하는 공연예술로 5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허 선생은 1과장 '문둥북춤' 분야다. '문둥북춤'은 문둥이가 북치며 춤춘다는 의미다. 조금 더 묘사하자면 문둥이가 굿거리장단에 탈을 쓰고 등장해 조상 죄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며 통곡한다. 이렇게 병마 고통을 춤으로 표현하다, 후반부에는 스스로 극복하며 새 희망을 표현한다.

아들 허진도(48) 씨는 생전 아버지 춤을 이렇게 기억한다.

"농사일로 그리 무뎌 보이던 손이 춤출 때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손끝 하나하나 표현이 그렇게 섬세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고 허종원(1936~2012) 선생은 고성오광대 문둥북춤 분야에서 이름을 남겼다. 눈을 감기 전까지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전수 활동에도 열성을 다했다. /고성오광대보존회

허 선생은 이 분야에서 인간문화재 바로 밑인 '전수교육보조자'다. 생을 이어갔다면 올해 인간문화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고인으로서 생전 인간문화재에 대한 미련을 두고 있었지만, 결국 이를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허 선생이었기에 따르던 이들에게는 더 빛나는 존재로 남게됐다.

고성오광대보존회 황종욱(45)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농부로 가정을 돌보셔야 했으니 아무래도 춤 하나만 하신 분들보다는 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선 세대는 가족 버리고 고성오광대만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허 선생님은 이 둘을 함께 해야 하는 세대였습니다. 큰 별을 받치는 무수한 작은 별이 있는데, 허 선생님은 희생과 양보하는 삶을 사신 밑돌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올해 인간문화재에 등극할 수 있었을 것이라 아쉬움이 더 남습니다."

아들 허진도 씨는 떠난 아버지 빈자리를 어머니를 통해 느끼게 된다.

"아버지가 가정을 잘 돌보긴 하셨지만, 그래도 춤에 빠진 아버지에게서 외로움이 없었겠습니까. 5년 전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왔습니다. 이제 시골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새삼 아버지 빈자리를 느끼게 됩니다. 창원에 있는 제가 일주일에 두 번씩 꼭 찾아뵈며 그 빈자리를 채워드려야죠."

고 허종원(1936~2012) 선생은 고성오광대 문둥북춤 분야에서 이름을 남겼다. 눈을 감기 전까지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전수 활동에도 열성을 다했다. /고성오광대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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