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을 살리자 삶을 바꾸자] (29) 꽃 창포 심은 창원 북면 도랑

이달 중순 태풍 산바는 강력한 위력으로 도랑 살리기를 벌이는 마을에도 상처를 남겼다. 산을 등진 마을에는 흙더미가 쓸려 내려와 집을 덮치기도 했고, 하늘에서 퍼붓는 비에 도랑은 작은 다리가 잠길 정도로 넘쳐 흐르기 일쑤였다.

태풍이 할퀴고 간 뒤 창원시 의창구 북면의 마을 도랑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무곡천을 따라 놓여 있는 신음, 양촌, 신동 마을과 신천 상류라 할 수 있는 지개 마을을 지난 25일 차례로 둘러봤다. 무곡천은 인근 무릉산에서 발원해 낙동강 지류인 신천으로 흘러드는 지방하천이다.

많은 비로 유량이 급격히 늘어났으니 도랑은 물길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온 직후 도랑 인근 도로는 쓰레기와 모래 등으로 쑥대밭이 됐었다.

하지만, 물길을 정비했던 도랑에서는 변화의 정도가 크지 않았다. 물길이 넓어지고 양옆 둔치를 훼손한 것은 확실히 맞지만, 그나마 정비돼 있던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창원시 의창구 북면 신음마을 신음천이 올 여름 태풍으로 도랑살리기 구간 중 창포를 심지 못한 구간에 피해를 입었지만 창포를 심어 놓은 곳은 창포의 튼튼한 뿌리덕에 무사히 견뎌냈다.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누워 있는 창포. /박일호 기자

정비된 도랑이 그 모습을 흩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몇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 중 '꽃창포'의 역할이 컸다.

민·관 협력 도랑 살리기 운동의 발원지라고 이름이 붙은 신음마을에는 태풍의 그 위력마저 이겨낸 꽃창포의 힘이 숨어 있었다. 지난해 도랑 살리기 운동을 시작한 신음마을은 주민들이 그해 9월 도랑 한편에 직접 창포를 심었다.

신음마을 회관 앞 도랑을 보면, ㄱ 자 형태에 가깝게 굽이치는 부분이 있다. 이곳 콘크리트 벽면 앞에 바위를 쌓고 창포를 심었다. 물길을 하나로 만들고 흐르는 모양 또한 곡선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예전에는 물줄기가 하나 이상으로 제멋대로 흐르거나 메말라 있는 모습이었다.

신음마을 창포는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곱게 누워 있었다. 많이 자란 창포는 어른의 다리보다 훨씬 길다. 놀라운 것은 창포 뒤에 쌓은 지 1년밖에 안 된 돌덩이들이 이번 태풍에 멀쩡했다는 점이다. 이와 반대로 창포가 심겨 있지 않고 바위가 쌓여 있던 근처 벽면은 무너져 버렸다.

창포는 뿌리가 번져 물렁물렁한 땅을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이날 창포 뿌리도 살펴봤더니 적어도 30㎝ 이상 길이로 뒤엉켜 땅을 묶어두고 있었다. 세게 잡아당겨도 떨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땅이 단단하면, 유속이 빨라져도 쉽게 움직이지 않게 된다. 대부분 도랑 벽면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유속이 빨라지고 유량이 많아져 그 속력과 압력에 못 이겨 둔치부터 망가지게 되고 물이 스며들어가 벽면에 쌓아둔 돌덩어리들이 내려앉는다.

   

그러나 창포를 벽면을 따라 심어 놓으면, 이 같은 유실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음마을 이상철 전 이장은 "물길 정비를 안 하고 창포를 심지 않았다면, 500~600㎜ 이상 내린 이번 비에 도랑은 아주 결딴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누워 있는 창포는 뿌리가 있기에 서서히 살아나거나 새잎이 돋아날 것으로 보인다.

무곡천 중간에 있는 양촌마을 역시 도랑이 창포로 온전히 남을 수 있었다. 지난 5월 늦봄에 심은 창포가 길이 200m가량으로 폭 1m 안팎의 좁은 도랑을 보호했다.

비가 쏟아지더라도 창포는 벽면을 따라 누워 물이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이 계속 벽면에 부딪혀 한쪽만 침식하면, 곧장 붕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양촌마을에서 1.5㎞ 떨어져 하류에 있는 신동마을은 안타깝게도 지난 7월 말 심은 창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폭 1m 안팎으로 좁은 물길도 3m 이상으로 넓어졌고, 둔치에 심어 놓았던 창포는 보이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심은 것이어서 가파른 물살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동마을 사례를 계기로 봄과 가을에 창포를 심어야 한다는 교훈도 얻게 됐다. 여름철에 창포를 심은 것은 이처럼 워낙 큰 태풍이 올 것이라는 예측을 못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랑이 여러 갈래인 지개마을은 물길 정비를 한 곳과 하지 않은 곳의 차이가 컸다. 우선, 정비를 하지 않은 도랑에서 태풍은 물길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모퉁이 콘크리트 벽면을 따라 도랑이 흐르고, 나머지는 아예 풀밭이 돼 모래와 쓰레기의 퇴적 현상만 생기고 있다. 물길이 이렇게 흐르면, 많은 비가 내릴 때 둑이나 벽면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정비한 곳은 물길이 그나마 가운데로 살아 있었다. 양쪽 둔치도 어느 정도 훼손됐지만, 남아 있었다. 둔치를 보호하는 방법이 창포이기도 하다. 창포가 뿌리를 통해 흙을 붙들어 매기 때문이다.

요컨대 도랑 살리기를 통해 물길을 정비하고 둔치를 조성해 창포를 심으면, 폭우나 태풍으로 무너진 둑을 다시 쌓아야 할 때 써야 하는 예산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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