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곳에서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난무한다. 기업은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한다며 호들갑이고, 지방자치단체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의 명소와 명물을 만들겠다며 야단법석이다. 심지어는 개개인에게조차 자신만의 스토리를 발굴하라고 채근하는 분위기다.

이쯤되면 스토리텔링의 의미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단어·이미지·소리 등을 통해 사건·이야기·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은 전달과 기억이 목적이다. 이야기·영상·이미지·음악 등은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도구 혹은 수단에 불과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전달되고 기억되면 된다.

스토리텔링과 혼동하는 개념으로 내러티브(narrative)가 있다. 내러티브란 인과관계로 엮인 실제적 혹은 허구적인 이야기다. 따라서 내러티브는 이야기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이야기가 실제냐 허구냐는 상관 없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KBS '1박2일' 촬영지는 명소(?)가 된다. 이를 묶은 책까지 나왔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의 관광명소나 특산물을 알리기 위한 스토리텔링을 한다면서 실제로는 이야기(내러티브)를 만드는 데 열심이다. 뭔가 폼나고 그럴듯한 이야기라야 먹힌다는 강박관념과, 역사와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관료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옛 문헌을 인용하고, 밑도 끝도 없는 설화나 전설을 끌어오고, 조선시대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으로까지 시간적 배경을 확장하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역사적 인물 한 명쯤은 반드시 등장시키기 마련이다. 특산물의 경우에는 동의보감의 기록과 임금님 진상품이었다는 이력 정도는 있어야 팔리는 줄 안다.

지역의 역사와 콘텐츠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내러티브의 근간인 인과관계에 집착한 나머지 허위·과장·날조·배제 등 심각한 역사 왜곡이 서슴없이 이뤄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재미라도 있으면 말을 안한다. 하나같이 허접스럽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애당초 폼나는 이야기가 목적이고 전달은 뒷전인 까닭에 스토리텔링이 될 턱도 없다. 적잖은 예산을 들여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어 봐야 '1박2일' 한번 왔다 가는 것만 못하다.

이 사실은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니 이제는 너도나도 1박2일 유치에 혈안이 됐다. 이런 식의 해법은 당장에는 효과를 볼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지역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갑자기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작은 동네에 1박2일 로고가 찍힌 간판만 수두룩하다.

결국 지역성은 온데간데없고 어딜 가나 똑같은 모습이다. 개념을 상실한, 무분별한 스토리텔링이 가져 온 예정된 결과다. 그나마 이 과정에서 학습효과라도 얻었다면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우리 지역의 민얼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요즘 관광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것(only one)'이고, 유일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훌륭한 스토리텔링이다. 제발 다른 곳에 예산 낭비말고 지역이 가진 자산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파악하도록 하자.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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