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57) 가을 소리를 찾아서…유난히 감수성 자극하는 귀뚜라미 소리

◇가을 귀뚜라미 소리와 노래 = 귀뚜라미는 7월에는 들에서 울고 8월에는 마당에서 울고 9월에는 마루 밑에서 울고 10월에는 방에서 운다고 했나요. 귀뚜라미는 가을의 고독과 슬픔을 이야기하나 봅니다. 가을남자를 외롭게 만드는 귀뚜라미 노래를 찾아보면 의외로 많아요.

백영규의 '슬픈 계절에 만나요' 가사를 곱씹어 보면 귀뚜라미는 7080 세대의 슬픔과 고독이 잘 묻어나죠. '귀뚜라미 울음 소리에 가슴 깊이 파고 드는데 들리지 않는 그 목소리에 스쳐가는 바람 소리뿐.'

최헌의 '오동잎'은 제목과 첫 소절에만 오동잎이 나오고 그 뒤는 모두 귀뚜라미 노래죠.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

김범룡의 최대 히트곡 '바람 바람 바람'도 '문 밖에 귀뚜라미 울고'로 시작해요.

동요 '오빠생각'도 1절엔 뜸북새와 뻐꾹새로 시작하지만 2절은 기러기와 귀뚜라미로 가을소리이죠.

   

◇안치환 귀뚜라미 = 풀벌레 소리가 가장 잘 나타난 노래가 나희덕 시에 안치환이 노래 부른 귀뚜라미일 듯해요.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 내 울음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오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토하는 울음 /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

우~ 귀뚜루루루 귀뚜루루루 귀뚜루루루 귀뚜루루루

보내는 내 타전 소리가 / 누구의 마음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위로 실려갈 수 있을까

◇귀뚜라미로 통일된 이름 = 귀뚜라미, 방울벌레, 베짱이, 긴꼬리, 쌕쌔기 참 예쁜 이름도 많고 소리도 정말 많아요.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귀뚜라미라고 부릅니다. 왜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든 풀벌레 소리는 귀뚜라미라고 불렀을까요?

먼저 이유를 찾는다면 굳이 분류하고 나눌 필요를 못 느낀 것이죠. 들판에 백로, 왜가리, 황새, 학이 있으며 모두 항새라고 불러요. 크다고 갱상도 할매 할배들은 항새라고 하고요. 참새, 오목눈이, 곤줄박이, 박새처럼 작은 새는 모두 뱁새라고 했어요. 풀벌레가 우는데 이놈은 방울이, 저놈은 철써기 하지 않고 모두 귀뚤이 하는거죠.

◇서양과학과 동양 = 서양에서는 해부하고 나누고 쪼개서 분석하는 것이 과학이죠.

요즘 초등학교 과학책도 이렇게 쪼개고 나누고 분류합니다. 동물을 나누고 식물을 쪼개죠. 초등학생부터 쌍떡잎 식물과 외떡잎 식물의 뿌리, 줄기, 잎이 다른 것을 자르고 잘라서 배우죠. 꼭 나누고 쪼개서 배워야 하는지 참 답답한 현실이죠.

하지만 우리 동양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전체에서 통으로 바라보죠. 크게 보고 자연을 바라보죠.

◇일본과 한국 = 같은 동양이지만 일본하고 우리하고도 다른 점이 많아요. 일본은 지진 해일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라이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변화에 민감한 나라예요. 그래서 아침에 피었다가 곧 지고 마는 나팔꽃을 좋아하죠.

새벽에 나팔꽃에 내려앉은 이슬을 사랑하는 민족이 일본 사람이라면 한국 선비들은 소나무, 바위, 국화처럼 지조, 절개,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죠. 풀벌레 소리를 마음 속 깊이 감성으로 들었던 나라는 일본 쪽이고요. 우리 선비들은 가슴보다는 머리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밤에 잘 들리는 소리 = 귀뚜라미 소리는 왜 밤에 잘 들릴까요? 밤에만 울어서 그런가요? 비오는 날 소리가 더 크게 울리듯이 기온이 높은 낮보다는 밤이 더 소리가 크죠. 눈으로 보는 낮보다 깜깜해져서 귀가 더 민감한 밤이 더 잘 들리테죠. 일을 해야 하는 낮보다는 여유있고 감성적인 밤에 더 잘 들리겠죠.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소리 = 귀뚜라미소리는 듣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고 하네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곧 겨울이 다가오니 더 열심히 일하세요"라고 들리는 사람도 있고요. "지금 아니 놀면 추워지면 못 노나니!"로 들리는 사람도 있겠죠.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에겐 너무 슬픈 소리로 들리겠죠.

내 가슴과 내 머리 속에는 귀뚜라미가 어떻게 들리는지요? 가슴 속 깊이 풀벌레 소리가 가을이 되어 찾아옵니다.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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