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근 교수 "파이핑 현상"vs수공 "단순한 물빠짐일 뿐"

합천군 청덕면~창녕군 이방면을 잇는 합천창녕보에서 보 호안 밑으로 상류 쪽 물이 하류 쪽으로 통과하는 '파이핑 현상'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방치하면 구조물 아래 모래가 쓸려나가면서 보 붕괴 위험이 커진다.

22일 오후 합천창녕보 직하류에서 30~40m 정도 떨어진 좌안에 넓은 거적이 깔렸다. 태풍 '산바' 이후 호안이 유실되면서 흙과 모래를 덮어 가려놓은 것이다.

2500㎡ 면적의 호안 대부분이 유실·침하된 상태였다. 호안을 보호할 목적으로 철망 속에 돌을 집어넣어 이불처럼 지표면에 까는 '매트리스 게비온'도 소용이 없었다. 강한 물살에 철망이 뜯겨 나가고 돌무더기는 쓸려나갔다. 거적을 들췄더니 호안 가장자리를 따라 모래 사이로 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4대 강 조사위원회·환경운동연합 등과 21일부터 23일까지 태풍 '산바' 이후 낙동강 현장조사에 나선 관동대 박창근 교수는 이날 "파이핑 현상으로 보인다. 이대로 두면 물이 흘러나가는 구멍이 커지고 결국 보가 주저앉을 수도 있다. 부실 설계·시공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22일 오후 태풍 '산바' 이후 낙동강 현장조사에 나선 관동대 박창근 교수가 합천창녕보 좌안에서 파이핑 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정봉화 기자

파이핑(piping)이란 수압이 커지면서 주변 지반이 침하돼 생긴 틈으로 물이 들어차 파이프 모양의 물길이 되는 현상이다. 흙과 콘크리트 경계면에서 발생하기 쉬운데, 호안을 시공할 때 파이핑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장자리에 물막이벽을 만들어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02년 큰 침수 피해가 났던 함안군 법수면 백산둑 붕괴 원인이 파이핑 현상 때문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박 교수는 "태풍이 지난 지 일주일이 다 돼가는데도 호안에서 물이 비슷한 속도로 흘러나오는 것은 파이핑 현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둑에 난 작은 구멍을 주먹으로 막아 마을을 구했다는 네덜란드 소년의 동화를 빗대 설명했다. 그는 "태풍 등 자연재해로 지속적으로 침식이 일어나고 복구하는 과정을 거쳐 안전화될 때까지 10~20년이 지나면 하천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4대 강 공사 뒤 자연치유가 불가능해졌고, 보와 생태공원에 끊임없이 유지관리비용이 든다면 보 철거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제대 박재현 교수도 "집중호우로 스며든 물이 빠져나오는 현상과는 다르다"며 "지난 7월에도 이런 현상이 발생해 파이핑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고 같은 분석을 내놨다.

이에 대해 한국수자원공사 측은 태풍으로 불어난 강물에 의해 호안 일대가 잠긴 뒤 물이 빠지는 현상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수공 관계자는 "호안에 깔린 흙이 투수성이 좋지 않아 물이 아직 다 빠져나가지 못했다"며 "배수 시스템과 기타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시공사 측에 설계를 다시 해서 장기적으로 보수하라고 지시했지만 파이핑 현상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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