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부부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연애, 시작하기도 전에 다칠까 봐 두려웠다. 연애 한 번 하면 상대와 결혼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신중에 신중을 더해 상대를 골랐다. '성격이 비슷하면 좋을까, 아니면 정반대면 좋을까?', '같은 직종에 있는 남자와 사귀어볼까, 아니면 다른 직종에 있는 남자와 사귀어볼까?'. 그때마다 결혼한 선배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너한테 잘해주는 남자가 최고야." 그런데 이상하다. 그들을 만나고 나니,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게 산다'는 말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부부라서 행복하고 예술가라서 더 행복한, 때론 민감하게 반응하고 꼼꼼하게 따져 묻지만 예술로 쉽게 융합할 수 있는, 두 쌍의 예술가 부부를 만났다.

◇뚝딱뚝딱 목공예+쓱싹쓱싹 회화 = 수줍음을 유난히 타는 남자와 사내 대장부같이 씩씩한 여자가 만났다. 윤상조(70·목공예·사진 오른쪽)·정은승(68·서양화) 부부다.

두 사람은 결혼 적령기에 누군가의 소개로 만났다. 윤상조 작가는 그 당시 사업을 했고 정은승 작가는 미술교사였다.

정은승, 윤상조 작가./김구연 기자

점잖은 성격이었으나 사업하기엔 '대찬' 면이 없었던 윤상조 작가는 아내의 권유로 목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 목공예를 하기에는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니, 예사롭지 않더라고요."(정은승)

그들은 1979년 동서화랑에서 첫 부부전을 열었다. 이번달 5일부터 11일까지 대우백화점 갤러리에서 10번째 부부전을 열기도 했다.

이 역시 아내 정은승 작가의 아이디어였다. 개인전을 여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둘 다 예술가니 굳이 따로 전시를 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절묘하게도 한 명은 입체, 한 명은 평면 작업을 하니 싸울 필요 없이 한 명은 전시실 바닥을, 한 명은 전시실 벽면을 채우면 됐다.

"서랍장과 수납장은 여자들이 많이 고르잖아요. 여자의 취향에 대해선 제 아내가 빠삭하니,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죠."(윤상조)

실제로 윤상조·정은승 작가의 작품을 보면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었다. 누가 부부 아니랄까 봐 작품에도 '우리 부부요'라는 표시를 냈다. 그럼 티격태격 다툴 때는 없을까.

"왜 없겠어요? 예술가가 예민해 사소한 걸로 잘 다투죠. 서로에 대해 잘 알다보니 간섭도 많이 하게 되죠. 작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어요"라고 둘 다 웃으며 말했다.

◇훨훨 양산학춤 +찰칵찰칵 회화 = 김완수(53·사진 오른쪽) 작가는 '그날'도 '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마산공설운동장을 찾았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탈춤'에 꽂혀 춤사위를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했고, 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녔다. '그날'은 2003년으로 경남민속경연대회가 열리던 날이었고 지금의 부인을 만나는 운명의 날이었다. 김완수 작가의 부인 서남주(43) 씨는 경상남도 지방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원시보유자인 김덕명 선생의 제자다.

서남주, 김완수 작가./김구연 기자

"공연을 끝내고 쉬고 있는데 한 남자가 '여기 있네'라며 저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러더니 갑자기 사진을 찍었는데 그림을 그려도 되냐며 묻더군요."(서남주) 그때부터 김완수 작가는 공연마다 사진을 찍어댔고 서남주 씨는 김완수 작가의 모델이 됐다. 그리고 2005년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을 했다.

"예전엔 무작정 필름카메라를 들고 행사장을 찾았어요. 수천 장을 찍었는데 막상 인화해보면 사진이 별로인 거예요. 현장에서는 '바로 이거야' 하면서 찍었는데 집에 오면 '에이 아니잖아'라고 실망하기 일쑤였죠. 아내을 만나면서 춤에 대한 지식도 높아졌고 나만의 모델이 되어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죠."(김완수)

서남주 씨는 올해 7월 불볕더위가 한창일 때, 집 앞에서 췄던 양산학춤 사진을 보여줬다. 양산학춤은 학의 24가지 동작을 춤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궁중 학무와 달리 갓과 도포 차림의 선비 복장이 특징이다.

"학춤은 버선발로 잦게 내딛는 발동작이 포인트인데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땅바닥이 뜨거운 거예요. 할 수 없이 전각에 올라가서 뺑뺑이 돌면서 춤을 췄죠. 정확한 동작을 카메라로 잡아내기 위해 같은 동작을 수도 없이 반복합니다. 모델이 쉽지가 않죠."(서남주)

한 명은 춤을 추고 한 명은 그것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고. 행복해 보인다. 그래도 불만은 있다. "개성이 강하니 부딪치는 부분이 있어요. 감수성이 풍부하기도 하고…. 심하게 싸울 때도 있지만 싸움을 피하는 기술이 생겨 괜찮습니다."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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