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17) 거창 유한농원 운영하는 한호균·상진 씨 부자

거창군 주상면에서 유한농원이라는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한호균(56) 대표. 젊어서는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지금 한 대표의 곁에서는 아들 상진(33) 씨가 든든한 버팀목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유한농원은 1ha(3000평)에서 1850그루의 사과나무를 키운다. 지난해 소득은 약 2억 원. 하지만, 올해는 볼라벤과 산바 등 연이은 태풍으로 절반 이상이 피해를 봤다.

◇아버지 이야기 =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객지 생활을 하던 한 대표는 IMF 외환 위기 때 귀농을 결심했다.

"IMF가 터지면서 농업도 망한다고 할 때였지만, 이때가 오히려 농업을 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본이 없어서 지인의 농장을 임차해 과수 농사를 짓고 다른 농장에서 일도 배웠습니다. 교육도 많이 받으러 갔죠."

1998년, "안 된다"는 주위의 우려 속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박 사과'로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거창 유한농원 운영하는 한호균(오른쪽)·상진 씨 부자. /김구연 기자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마인드를 바꾸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지치기를 하더라도 그냥 아무렇게나 자르는 것이 아니라 이 나뭇가지가 10년 후에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생각을 해서 해야 합니다. 신 농법 도입에 겁먹거나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2002년 과수원을 샀다. 그곳에는 사과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한 대표는 나무를 모두 없앴다.

"아직 충분히 수확할 수 있는 나무인데 아깝게 왜 없애느냐고 또 주위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전혀 아까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까지는 농사가 생산자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소비자 위주로 맞춤 농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품종이었던 나무를 모두 없애고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신품종으로 모두 새로 심었습니다."

2004년 유럽에 견학 갔던 한 대표는 '기꾸 8호'라는 착색계 후지 사과를 보고 2005년 과수원에 심었다. 당도와 모양이 경쟁력 있다고 판단했다.

유럽에서 우박 방지 시설을 보고 농장에 적용하기도 했다. 이 시설은 우박뿐 아니라 새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여름 땡볕에 사과가 타는 '일소과'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유한농원은 사과나무를 줄을 맞춰 심는 '밀식 과수원' 형태로 돼 있다. 작업로 3.5m, 나무 사이 1.5m를 띄워 줄을 맞춰 심었다.

"땅은 비싸지만, 지상은 주인이 없습니다. 적은 면적에서 많은 양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위로 높이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 사과나무는 4m까지 자란다. 너무 높이 자란 탓에 작업에 어려움이 있을 법도 한데, 그 반대라고 했다. 이곳에는 다른 농장에서는 필수품인 '사다리'가 없다. 나무가 정렬해 있으니 작업차로 쉽게 작업할 수 있다.

"영농 자재비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바로 기계화입니다. 다른 농장이라면 사람을 써서 수확작업 등을 해야 하지만, 이곳은 저와 아들, 그리고 아내(유춘옥·55)가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한 대표는 새 묘목을 도입할 때 제일 좋은 묘목, 그리고 1년생이 아닌 2년생 묘목을 사온다.

"작년에 2만 2000원을 주고 2년생 묘목을 사왔는데, 올해 벌써 사과가 열립니다. 지금 이 나무만 해도 대략 30~40개가 열려 있네요. 한 상자만 수확해도 3만 원이 넘죠. 보통 눈앞의 투자만 생각해서 가격이 절반가량으로 싼 1년생 묘목을 사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면 수확까지 2~3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보다는 2년생 묘목을 사 와서 1년 후 한 상자라도 수확하는 게 이득입니다. 투자에 대한 마인드를 바꾸어야 합니다."

◇아들 이야기 = 한 대표는 "아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불러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 상진 씨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내 발로 순순히 들어왔다"고 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며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상진 씨는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잠시 했다. 귀향은 3년 전 했다.

"적성에 맞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적성에 맞지 않으면 못합니다. 또 현실적으로 돈이 되니까 왔죠. 우리 과수원은 다른 과수원에 비해 일손이 덜 가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땀과 노력을 보고 자란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와 '젊음'을 보탰다.

"아버지가 처음 농사지을 때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보고 주위에서 '미친사람'이라고 했습니다. 5~10년을 앞서가는 기술과 투자로 고생도 하고 실패도 했지만, 그게 지금은 다 먹히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의 30년 연륜을 따라잡진 못합니다."

상진 씨는 농장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적용하고 시설을 개발해 특허를 내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유한농원에는 우박방지 시설뿐 아니라 다른 농장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시설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반자동 동해 방지 방초 시설'이다. 2009년 특허를 출원해 올해 특허 등록됐다. 이 시설은 사과나무 주위를 검은 부직포로 덮어 놓은 것이다. 여름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방지하고, 겨울에는 보온 효과가 있어 동해를 막는다. 또 수분 증발이 빨리 안 되는 효과도 있다.

"3000평 과수원에서 혼자 잡초를 베려면 3일쯤 걸릴 겁니다. 1년에 6번 벤다고 하면 18일이 소모되죠. 하지만, 여기선 18시간이면 됩니다. 그만큼 작업 능률을 높일 수 있으니까, 나머지 시간에 고품질 사과 수확에 더욱 매진할 수 있습니다."

또 자동 농업용 시트 개폐 장치도 특허 출원 중이다. 이는 은박지를 나무 아래쪽에 설치한 것으로, 아랫부분에도 빛이 잘 가게 해 사과 착색을 고르고 좋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은박지를 피복하는데 2분, 회수하는데 2분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이 장치가 없으면 아마도 40분 이상 걸릴 겁니다. 그만큼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죠."

동해 방지 부직포 시설은 거창군 농업기술센터가 제안과제로 농촌진흥청에 제출한 것이 채택돼 내년 국비 지원으로 전국에 확대 보급될 예정이다.

그동안 '거창 사과'라는 지역 브랜드로 사과를 판매하던 이들 부자는 지난해 '사과숲愛'라는 상표를 만들어 올해 상표 등록을 완료했다. "무한경쟁 시대에 차별화를 위해서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내 브랜드는 내가 판매하는 사과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과수원을 더 가꾸고 기술을 개발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계획을 태풍이 부수어 버렸다. 아래에서 부는 바람과 산 위에서 내려온 바람이 만나 회오리를 일으키며 한순간에 과수원을 덮쳤다. 시설 복구까지는 약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자의 꿈. 아버지의 꿈은 재배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고, 아들의 꿈은 기술 특허를 10개 획득하는 것이다.

<추천 이유>

△성낙삼 거창군농업기술센터 과수담당 = 유한농원 한호균 대표는 33년간 사과 과수원을 경영하며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농가 경영안정화와 인건비 절약, 고품질 과실 생산을 위한 재배방법의 개선 등 차별화된 기술력과 노하우로 과실 생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2012년 탑프루트 거창군 회장, (사)기꾸발전협의회 회장에 재임 하는 등 활발한 지역내 활동을 통해 지역 과수 농업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태풍 볼라벤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생각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된 시설 연구 및 기술개발에 앞장서기 위해 새로운 준비를 하는 당찬 포부와 결단력을 가진 CEO로서 전국의 많은 과수농가에 귀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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