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막신을 신고 의관을 정제한 채 가슴을 뻐기며, 곁눈질을 않고 걷는 양반을 생각한다면 현대인들은 웃음부터 나올 것이다. 배부른 선비만이 과시했던 특권도 아니요, 가난한 선비 역시 예의와 염치를 중시하였을 것이다. 대의명분을 중시하고 이에 의해 생사의 길에서 죽음을 두려워 않고 직소할 수 있는 그런 충정이 선비들에겐 있었다.
그러나 현대인은 약다. 큰 일에 약은 것이 아니라 작은 일에 약다.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을 위한 일에 약은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사로운 이기심과 욕심에 약다. 돈과 권력에는 한없이 약은 자가 되어 치부와 아부를 일삼으며, 힘없고 순박하며 어리석은 자에게는 모진 고통을 안겨주는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권력에게는 상명하복의 충실한 개가되어 짖어대는 우리 ‘정치꾼’들은 국민의 마음도 모른 채 오직 당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정략을 앞세운 총수의 말 한마디가 전체 국민의 뜻인 양 오도하는 정치꾼들은 우리 선비들의 직소 정신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할 말은 하자, 그러나 남의 말을 대변하지는 말자.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자는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도 역시 할 말은 해야한다. 반만년 이상을 지켜온 우리의 음식문화를 이러쿵저러쿵하는 위세에 일침을 가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지구촌 축제를 볼모로 하여 터져 나오는 한 소리 한 소리가 이젠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국제사회는 강대국을 축으로 주위의 여러 국가들이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며 공생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산술적인 계산으로만 이익이냐 손해냐 하는 경제원리로 따질 것이 아니라, 민족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말을 해야 한다. 강대국의 주장대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해에 맞게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화기에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최익현이 올린 상소문에 ‘차두가단 차발불가단(此頭可斷 此髮不可斷)’즉 ‘이 목은 잘릴지언정 이 머리는 깎을 수 없다’ 라고 하여 우리에게 할말은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웠다.
정치꾼들이여. 선비정신을 배워라. 할 말은 할 줄 아는 기개를 배우고 당론에 따라 좌우되는 기계가 아니라 소신에 따라 정치하는 참된 정치를 배워라. 경제가 어렵다지만 반도체도 국가의 근간이요, 농업도 국가의 근간이다. 어느 한쪽을 위해 한쪽을 포기한다는 것은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정략에 의해 우리 국민은 너무나 큰 희생을 당했고 할말도 못하는 무능한 정치꾼들에 의해 민족의 미래는 어둡다. 정치꾼들이여 선비정신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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