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구원과 복수에 관한 영화다. 구원과 복수. 이 두 단어만큼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잘 설명하는 키워드는 없다. 여야 모든 대선 주자가 당신의 고통을 해결할 구원자를 자처한다. '잃어버린 5년'을 되찾겠다고 벼르는 세력도 있다. 3년여 전 한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죽음'에 대한 복수심 역시 없을 리 없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피에타〉는 구원도 복수도 '속죄'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속죄는 최소한의 인간성의 확인이다. 잔인한 사채 청부업자 강도(이정진), 복수를 위해 온갖 치욕을 감수하는 '엄마'(조민수), 그들이 자신의 숭고한 뜻을 실현하는 방식은 속죄와 희생이다. 엄마는 최후의 복수를 앞두고 이렇게 엉엉 울부짖는다. "그런데, 그 자식도 불쌍하더라고…."

김기덕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믿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하진 않는다. 아니, 포기하지 말자고 호소한다. 먹고살기 위해 남의 손을 자르는 '짐승만도 못한' 가해자(이자 피해자),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자신의 손을 자르는 '어리석은' 피해자(이자 가해자), 가족의 핏빛 고통을 물려받은 죄인들(이자 악마들) 모두 구원과 속죄의 대상이다.

영화 〈피에타〉의 한 장면.

누가 과연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김기덕은 직접적으로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지목하지만 이를 지탱하는 정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대선 주자들은 너도 나도 우리에게 다가와 눈을 맞춘다. '어렵지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믿어주세요.'

하지만 누구도 속죄하진 않는다. 새누리당 박근혜는 수많은 정치·경제적 희생자를 낳은 아버지 박정희의 18년 통치 기간에 대해 여전히 진심어린 반성이 없다. 민주통합당 문재인은 신자유주의 경쟁질서와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비판에 아랑곳 않고 민주정부 10년을 발전·계승하겠다고 말한다. 안철수에게도 물어야 한다. "그토록 많은 죄인들이 세상을 서성거리는 동안 당신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통합진보당 등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나선 정치세력은 더 참담하다.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을 위한 정치를 약속했지만 실상 그들의 머릿속엔 자신과 자기 정파의 이해관계밖에 없었다.

〈피에타〉는 이야기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을 구원하겠다고 누군가 찾아온다. 모든 걸 바치겠노라, 당신의 모든 걸 사랑하겠노라 속삭인다. 그러나 그 역시 오직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원조차 복수로 이용하는 '또 다른 악마'였다.

〈피에타〉에는 김기덕의 전작들이 그러했듯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끔찍한 '현실'이 가득하다.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와 하나 되어 감화받고 위안을 찾는 걸 위선이나 허위로 여기는 듯하다. 당신이 지키고 싶어 하는 '안락한 현실'은 이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착각이나 환상은 아닌지 혼돈 속에 빠져든다.

많은 사람이 꿈을 꾼다. 박근혜가 되면, 안철수가 당선되면, 문재인이 이기면 우리의 고통은 끝이 날거야. 그러나 뜨거운 열망과 환호의 시간이 막을 내리면, 다시 당신 앞엔 언제 망할지 모르는 직장·가게의 공포가, 당신을 짓밟고 넘어서려는 경쟁자들의 눈빛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여 살려야만 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나고, 얼마 안가 그들은 다시 당신 앞에 찾아와 구원자를 자처한다. "유권자들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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