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집을 샀다. 햇볕에 빨래를 널어 말릴 수 있는 만큼의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다. 오래된 집이라서 손볼 데가 많아 결국 집을 먼저 수리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삿날이 얼마 남지 않아 촉박하게 공사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지인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일이 진행됐다.

그러나 태풍이 올라온다는 일기예보에 이삿날까지 집 수리가 끝날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으로 거의 매일 공사현장에 들렀다. 기둥만 남겨두고 집을 거의 다 뜯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런데 일꾼 속에 50대를 훨씬 넘긴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생전에 막일을 하시며 생계를 꾸렸던 아버지가 떠올라 그 아저씨를 바라보는 게 불편하고 안타까웠다. 음료수를 건네며, 힘드시죠, 내 편에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힘들지, 안 힘들겠나, 진즉에 공부나 좀 했으면 나이 들어 이런 고생 안 하제.”

“호호, 그러게요, 공부 열심히 하시지 그러셨어요?”

“말도 마라케도…. 내가 공부만 할라카믄, 정전이 되 삐질 않나, 학교만 갈라카믄 눈이 많이 와서 못가고, 비가 많이 와서 못가고, 그랬다 아이가.”

“하하, 아저씨, 재밌는 분이시네요.”

“재밌기는, 아이고, 우짜다가 맘 묵고 책 볼라 카믄, 하필이믄 돼지가 새끼 논다고 빽빽 거리고, 누에들은 또 을매나 시끄럽다고, 뽕잎 묵는 소리가 밤마다 서걱 서걱 들려싸서 올케 잠이나 오나, 20리 걸어서 학교 가믄 잠만 오지, 그래서 내가 공부를 못 했다 아이가, 공부만 했으면 흰 샤쓰 입고 일하제, 이런 고생하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힘든 일을 하시는 것에 비해 매우 유쾌한 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수업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육체적 힘겨움과 그만큼 무거웠을 삶의 무게를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진한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교실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곤혹스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씁쓸해졌다.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에 나오는 재벌 아들처럼 일부러 가난 체험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생스러움을 경험해본다면 현재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축복되고 행복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며, 제자들에게 한마디 건넨다. 세월이 흐른 뒤 아저씨 같은 변명이나 농담이라도 할 수 있으려면, ‘그땐 너무 힘든 시절이었어’라는 공감대라도 있어야 부끄럽지 않은 것 아닐까.

“꼭 흰 샤쓰 입는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조금만 더 힘내보자, 얘들아. 우린 적어도 정전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있는 건 아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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