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도 소리 질로 수컷 파악 가능

◇소벌의 소리 = 도시의 초가을 밤은 낮 더위 찌꺼기와 일상에 찌든 심신을 더욱 지치게 하지만 가을로 접어드는 '소벌', 어둠 속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는 지친 우리를 위로한다.

버즘나무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오는 바람소리, 때르렁때르렁 숲으로부터 울리는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그중에도 늪 사이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가을이 문턱에 와 있음을 알리며 우리를 자연 속 깊숙이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풀벌레 소리 = 보통 생물이 내는 소리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생물이 내는 소리는 불규칙하고 무의미한 소리와 구별된다. 마치 공장에서 나는 소음과 엄선된 화성으로 짜인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그것이다.

벌레 소리는 직접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소리를 활자로 바꿔, 즉 청각의 세계를 시각의 세계로 전환하여 지면에 나타내는 것은 무모하고 부정확한 일이며, 자연을 무시하는 어설픈 처사다. 차라리 악보로 옮긴다면 그럴 듯한 시도가 될 법한데, 그 작업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옛날에는 벌레 소리를 악보화한 낭만적인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매미목 매밋과 약 15종이 제각각 독특한 소리로 운다. 하지만 가장 많은 소리를 내는 무리는 역시 메뚜기다.

귀뚜라미·여치·베짱이 등은 청각을 이용해 짝을 유인한다. /김인성

한국의 메뚜기 140여 종 가운데 울지 않는 40종을 제외한 약 100종이 각각 다른 소리를 낸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귀뚜라미를 비롯해 방울벌레, 여치, 베짱이, 쌕쌔기, 땅강아지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매미 울음소리에 비해 메뚜기들의 울음소리는 매우 단순한 음이 반복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왜 울까? = 곤충이 소리를 내는 목적은 주로 이성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흔히 벌레 소리를 사랑의 세레나데라고 하고, 'love song'이라 한다.

반딧불이가 불빛으로 유인하는 것이 시각, 나방이 페로몬으로 유인하는 것이 후각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소리 내는 곤충은 청각을 이용해 짝을 유인하는 것이다.

소리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상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까다로운 암컷들은 소리의 질만으로도 수컷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서 잘 우는 수컷에게는 많은 암컷들이 모이고, 그렇지 못한 수컷은 찬밥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잘 우는 수컷이 있는 반면, 울지 않고 근처를 배회하다가 잘 우는 수컷에게로 가는 암컷을 살짝 가로채 짝짓기를 하는 종류도 있다는 것이다. 생물 진화의 입장에서 다양한 전략이 구상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나 곤충이 사는 곳이나 그런 얌체족들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마련인가보다. 사람이나 곤충이나 제발 정당한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인성(우포생태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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