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기침·열 치료하고, 조경에도 이용

태풍으로 서늘해진 밤, 가족 모두가 잠이 들었는데 저녁이 문제였는지 속이 좋지 않아 홀로 뒤척이다 일어났다. 좀 걸어볼까 해서 밖으로 나선다.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걷다 잠시 앉았다. 곧 노랗게 물들 은행나무와 아직도 빨간 꽃을 피운 배롱나무가 보인다.

다른 나무들과 떨어져 괜히 외로워 보이는 은행나무 옆 벤치에 앉았다. 가을이 가까워짐이 몸으로 느껴진다. 가로등 불빛을 따라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보랏빛 꽃들이 눈에 띈다. 한참을 바라본다. 꽃은 조금 시들긴 했어도 싱싱한 잎이 예쁜 맥문동이다.

맥문동은 잔디와 함께 맨땅의 녹화나 나무 아래 풀로 심는 대표적인 지피식물(地被植物: 땅 표면을 덮는 식물)이다. 오염에 강하고, 땅을 잘 가리지 않아 잘 성장하여 요즘 조성되는 정원이나 가로수길 큰 나무 아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피식물인 맥문동은 잎은 녹색이며 난처럼 길고 우아하다. /박대현

맥문동(麥門冬)이라는 이름은 뿌리가 보리 뿌리와 비슷하고, 겨우내 푸른 잎을 가지고 겨울을 이긴다고 하여 붙여졌다. 생명력이 강하고 겨울을 이기는 모습이 강해 겨우살이풀이라고도 하지만 진짜 겨우살이와 구분하기 위해 맥문동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다고 한다.

잎은 짙은 녹색인데 난처럼 길고 우아한 모습이며 길이는 30~50cm 너비는 1cm 내외이다. 난 화분에 심어 놓으면 난이라 해도 될 정도로 예쁘고 곧은 잎이다. 꽃은 6월부터 8월까지 피고 좀 더 쌀쌀해지는 10월 정도에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자줏빛 도는 검은색이다. 맥문동은 수염뿌리지만 뿌리 끝에 땅콩만 한 덩이뿌리가 생기는데 이것을 예부터 약초로 썼다.

<동의보감>에는 마른 기침,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한 데, 입안이 마르고 갈증이 나는 데, 피를 게우는 데, 각혈, 붓는 데, 변비 등에 약으로 쓰인다고 나와 있다. 우리네 주변에 이렇게 좋은 약초가 조경 식물로 심어져 있으니 시대의 흐름에 약초가 지피식물로 더 알려진 것이 재미있다.

맥문동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는데 고 박정희 대통령이 겨울에도 늘 푸르고 잎이 두터운 맥문동을 보고, 수입 사료 대신 맥문동 잎을 소먹이로 쓰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들은 억센 맥문동 잎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약초로서도 인정받고, 아름다움까지 가졌으니 맥문동은 가수와 연기를 모두 잘하는 이승기처럼 식물계의 멀티플레이어다. 하지만 내가 이승기 같지 않다고 서글퍼 말자. 쓰임 많은 맥문동도 소에게만큼은 쇠뜨기보다 못한 맛대가리 없는 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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