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 530호 '마애삼존불상' 좁은 바위굴에 새겨져 원형 그대로

거창은 한쪽은 가야산, 다른 한쪽은 덕유산 줄기로 둘러싸인 고산분지 지형이다. 가야산과 덕유산은 국립공원이다. 덕분에 거창은 두 개 국립공원을 낀 드문 지역이 됐다. 덕유산은 완만한 능선과 깊은 숲, 가야산은 가파른 산세와 당당한 암벽으로 매력을 뽐낸다. 훌륭한 산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곳 산도 좋은 숲과 계곡을 끼고 있다. 거창군이 위천면에 있는 금원산 일대에 자연휴양림을 조성한 것은 그런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가 되겠다.

금원산은 거창 위천면과 북상면, 함양 안의면에 걸친 산이다. 금원산 줄기는 기백산과 남령을 거쳐 남덕유산과 이어진다. 금원산에는 유안청계곡과 지재미골 두 골짜기가 유명하다. 여기서 솟는 물은 상천리에서 합쳐져 위천면을 가로지르는 '상천(上川)'이 된다.

   

금원산 곳곳에는 저마다 얽힌 이야기도 많다. 한 도승이 천방지축 날뛰던 금빛 원숭이를 가뒀다는 '납바위', 비가 내릴 때는 미리 안다는 '지우암(知雨岩)', 효자가 왜구를 피해 아버지를 업고 무릎으로 기어 피를 흘리며 올랐다는 '마슬암(磨膝岩)', 선녀 3명이 목욕을 했다는 '선녀담(仙女潭)' 등이 대표적이다. 금원산 입구에서는 '납바위' 이야기와 얽힌 금빛 원숭이 모형을 만날 수 있다.

금원산자연휴양림에 들어서면 오른쪽이 지재미골 방향이다. 계속 걸어 올라가면 수려한 계곡과 함께 문바위를 만난다. 문바위는 앞에 바위라는 설명이 없으면 높은 절벽으로 보일 만큼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안내에는 '단일 바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바위'라고 적어놓았다. 어쨌든 문바위 주변에 서서 큰 바윗덩어리를 한눈에 볼 방법은 없다.

문바위 주변은 등산객들이 짐을 풀고 쉬기에 좋다. 넓고 평평한 바위, 그 위로 흐르는 시원한 계곡은 오랜 걸음으로 쌓인 피로를 풀어준다. 또 깊이가 적당한 웅덩이도 한쪽에 있어 이곳에서 몸을 씻는 등산객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문바위를 돌아 조금 올라가면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가섭사지 뒤쪽에 난 계단으로 50m 정도 올라가면 바위굴을 만난다. 바위굴 안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매우 좁고 가파르다. 생김새만 계단이지 오르는 수고는 사다리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이 계단을 오르면 입구가 좁은 바위굴에 닿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방 한 칸 크기 정도 되는 공간 한쪽 벽에 새겨진 삼존불이 보인다.

마애삼존불상은 1971년 보물 제530호로 지정됐다. 삼존불상 이름 앞에 붙는 가섭암은 1770년대까지 이 근처에 있던 절이다. 지금은 그 흔적만 조금 남아있다. 바위에 부조로 새긴 삼존불은 여러 가지 특징으로 미뤄 고려시대 양식으로 짐작하고 있다. 가운데 부처가 서 있고 양쪽에 보살을 거느린 형태로 새겼다. 중앙은 아미타여래, 오른쪽은 관음보살, 왼쪽은 지장보살로 추정된다. 삼존불 오른쪽에 새긴 글에는 1111년에 제작한 것으로 돼 있다.

단일 바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문바위.

삼존불은 금원산 중턱에 있는데다 좁은 바위굴에 새겨져 있어서 그 원형을 대체로 잘 보존하고 있다. 또 바위굴 공간도 예닐곱 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적당히 외부와 단절된 분위기에서 기도를 올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곳이다. 긴 시간을 건너뛴 부조 불상 아래서 느끼는 영험함. 삼존불 아래 간단히 제를 올릴 수 있는 단에는 늘 양초와 향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취재 때도 무속인 한 명과 아주머니 3명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무속인이 경을 읊는 뒤로 아주머니는 계속 절을 되풀이했다. 제법 더운 날이었지만 바위굴 안은 비교적 서늘한 편이었다. 아주머니 한 분은 취재팀이 기도를 하러 온 줄 알고 자리 한쪽을 권하기도 했다. 900년 전 유적은 만든 목적대로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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